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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유산명)
성요한 수도원과 파트모스 섬 요한계시록 동굴 / Historic Centre (Chora) with the Monastery of Saint John
국가명
그리스
등재연도
1999
등재기준
(iii) (iv) (vi)
분류
문화
유산면적
위치
에게 해 남쪽(Region of the South Aegean) 도데카네스 제도(Prefecture of Dodecanese)
좌표
N37 17 60 E26 33 0
간략개요
도데카네스 제도(Prefecture of Dodecanese)에 있는 작은 섬 파트모스(Patmos)는 성요한이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집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0세기 말에 ‘사랑하는 제자(beloved disciple)’ 요한을 기리는 수도원이 건립된 이후 이 섬은 그리스 정교회의 순례지가 되었다. 마을 정상에 우뚝 선 수도원은 수려한 섬의 경관을 지배하며, 섬의 중심지였던 호라(Chora)의 마을에는 옛 종교적 건축물과 세속의 가옥이 많이 남아 있다.
정당성/가치
하기오스 이오니스 테오로고스(Hagios Ioannis Theologos, Saint John the Theologian) 수도원과 파트모스 섬 요한계시록 동굴(Cave of the Apocalypse)은 중세 시대 거주지인 호라 마을과 함께 뛰어난 건축학적 가치를 지닌 대표적 그리스 정교회의 순례지이다. 호라 마을은 12세기 이후부터 발전을 거듭해 온 그리스에 얼마 남지 않은 옛 주거지로서, 초기 기독교 시대의 종교 의식이 아직도 그대로 계승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곳이다. 하기오스 이오니스 테오로고스 수도원과 요한계시록 동굴은 ‘사랑하는 제자’ 성 요한이 그리스도의 가장 신성한 기독교 작품인 복음서와 계시록을 집필했던 곳이다. 넓이 약 88㎢의 파트모스는 도데카네스 제도의 최북단 섬으로, 대부분 좁은 지협으로 연결되는 3개의 화산으로 형성된 불모지이다. 이 섬에는 중세 시대 마을인 호라와 19세기의 스칼라 항구(harbour of Skala), 그리고 아담한 시골 마을인 캄포스(Kampos)의 세 정착지가 있다. 수도사 크리스토둘로스(Christodoulos)가 선택한 신학자 성 요한 수도원이 있는 곳이 전체 섬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다. 파트모스는 처음에는 도리아의 식민지였고 그다음에는 이오니아 헬라 인의 식민지였다. 이곳은 로마 제국에 흡수되었을 때 다른 에게 해 섬들과 마찬가지로 정치범들의 유배지로 사용되었으며, 죄수들 가운데는 도미티아누스(Domitian, Domitianus) 황제 시대이던 95년에 이 섬으로 유배되었던 사도 성 요한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른 많은 에게 해 섬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는 파트모스도 7세기 사라센의 습격으로 파괴되어 이후 2세기 동안 사실상 사람들이 살지 않았다. 이전에 레로스(Leros)와 코스(Kos)에서 수도원을 지었던 비니티아(Bithynian) 왕국의 수도원장 오시오스 크리스토둘로스(Hosios Christodoulos)는 1088년 비잔틴 제국의 황제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Alexis I Comnenus, Alexius I Comnenus)로부터 파트모스 섬을 하사받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 섬에 성요한을 기리는 수도원 건립을 시작했다. 당시 제국에서는 이 섬과 에게 해 연안에 사람들의 재정착을 유도하였고, 키오스 섬의 네아모니(Nea Moni) 수도원과 아토스산(Mount Athos)의 수도원들처럼 요새같이 견고한 수도원을 건립하는 것도 정착 정책을 일환이었다. 이 섬은 1208년에 베네치아 인들이 점령하였으며, 수도원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기혼의 평수사들과 주민들이 수도원 인근에 정착하면서 옛 주거지인 호라 마을이 세워졌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몰락한 후 약 100여 가정이 수도원 서쪽에 있는 호라에 다시 정착하였고 여기에서 이들은 알로테이나(Alloteina)라고 알려진 부유한 지역을 세웠다. 당시 이 정착촌의 모습은 가옥이 흩어져 있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16세기 초기 파트모스는 터키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만 오히려 파트모스 섬의 사람들은 터키에 항복하는 대가로 특정 세금의 혜택을 누리면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호라 주민들은 세금혜택을 이용해 선박·무역 사업을 벌였다. 경제적 번영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 부유한 상인들이 지었던 훌륭한 저택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 저택들 일부는 현재까지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번영도 1659년 프란체스코 모르시니(Francesco Morosini) 휘하의 베네치아 인들이 이 섬을 약탈하면서 끝나게 되었다. 1669년 캔디아가 터키에 함락된 후에는 베네치아 난민들이 이 섬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크레티카(Kretika)라는 새로운 주거지를 형성하였고, 이 주거지의 주 광장은 여자 크레타 성인의 이름을 따서 아기알레스비(Agialesvi)라고 불렀다. 도시 조직은 변화하기 시작하여 새로 건설되는 구조물의 크기는 이전보다 훨씬 작아지고 조밀해졌다. 서서히 과거의 무역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회복했으며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이 되어 다시 한 번 커다란 무역 중심지가 되었다. 18세기 중반에 마을이 확장되면서 아포르티아나(Aporthiana) 지구가 형성되었고, 오래된 많은 집들이 재건되고 새로운 대저택들이 지어졌다.
출처
유네스코한국위원회, 네이버 지식백과
사진 갤러리
http://www.unesco.or.kr/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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