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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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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고분군

가야고분군은 대한민국 남부에 위치한 김해 대성동고분군, 함안 말이산고분군, 합천 옥전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의 7개 유산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대한민국에는 가야와 관련된 고분군이 780여 개소 분포하고 있으며, 이 고분군에 축조된 고분의 수는 수십 만기에 달한다. 중앙집권화 된 국가체계를 이루지 않고 공존하였던 가야의 각 정치체는 지역마다 크고 작은 고분군을 조성하였다. 이 고분군들은 기원전후한 시기부터 대가야가 멸망하는 562년까지 지속적으로 조성되었다.

원거리 교역을 통해 반입된 외국계 유물은 가야의 국제관계를 반영한다. 가야고분군은 사라진 가야문명을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으로 의미를 지닌다. 가야고분군은 입지와 경관, 묘제의 변화, 부장유물을 통해 가야 사회의 내부구조와 변천과정을 보여준다.

1~2세기는 가야고분군의 형성기로 고분의 군집과 부장유물을 통해 가야의 성립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묘제는 목관묘이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고분은 입지가 구분되지 않고 군집 내에 혼재되어 있다. 상위지배층 고분은 목관 하부에 유물을 부장하기 위한 별도의 공간을 설치하기도 한다.

3~4세기는 왕과 지배층의 고분으로 이루어진 중심고분군이 출현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묘제는 목곽묘이다. 가야 왕묘는 구릉 정상부 능선을 따라 줄지어 축조되는 차별화된 특징을 보여준다. 목곽묘 내부에는 교역을 통해 수입된 유물을 비롯하여 막대한 양의 유물을 부장하는데, 이는 생전의 부를 과시하거나 사후의 안락을 염원하는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고분의 입지, 규모와 부장유물을 통해 엄격한 신분질서를 바탕으로 한 가야사회의 계층구조를 엿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고분군은 김해 대성동고분군이다.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다량의 철제무기와 철정, 대외교역품은 금관가야가 가야의 주도세력이었음을 증명한다.

5세기는 가야 각지에 정치체가 성장하면서 중심고분군이 확산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묘제는 석곽묘이다. 특히 이 시기는 고분군 축조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로 흙과 돌을 활용하여 봉분을 높게 쌓아올린 고총이 등장한다. 왕과 상위지배층의 무덤인 고총은 능선의 정상부를 따라 줄지어 축조된다. 이 시기 왕과 지배층 고분에는 장신구나 무기류 등 신분을 상징하는 고급 물품이 부장되고, 다수의 순장자를 각종 생활용품과 함께 묻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반면 소형분은 유물이 적고 순장자가 확인되지 않는다. 고분의 입지와 규모, 부장유물을 통해 가야사회의 계층분화가 가속화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5세기 후반이 되면 고령 지산동고분군에 별도의 왕릉 묘역이 조성되고, 40인 이상의 순장자가 묻힌 고총도 등장한다. 왕릉급 고총의 출현을 통해 대가야가 가야의 주도세력으로 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왕릉급 고총의 축조와 묘역 분리 현상은 가야 사회가 고대국가로 발전해가고 있었던 증거이다.

그러나 6세기 중엽, 가야는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562년 대가야를 끝으로 신라에 정복당한다. 가야의 멸망과 함께 가야고분군의 축조도 중단된다.

세계유산적 가치

가야고분군은 고분의 입지, 묘제의 변화, 배치방식 등을 통해 가야 문화의 성립과 발전, 소멸의 전 과정 및 가야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독보적인 물적 증거이다.

등재기준 : 세계문화유산기준 (iii)
  • (iii) 현존하거나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유일한 또는 적어도 독보적인 증거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