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나레이션 :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이집트 왕의 무덤만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아직도 많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피라미드를 비롯한 수많은 외국의 유적지를 찾아 세계여행을 떠날 때..
파란 눈의 외국인들은 오랜 동양의 신비를 찾아..
우리나라의 조선왕릉을 찾곤 할 터이다...
조선왕릉은
519년 동안 지속된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무덤으로,
2009년 6월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의 27대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모두 44기(基)에 이른다.
44기 중 40기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왕릉의 입지는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면서
자연의 지세를 존중하는 자연조화적 조영술을 따랐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능역은 한양성 서대문 밖 100리 안에 두어야 한다"라고
명시했는데, 도성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
도성을 중심으로 반경 10리(약 4㎞) 밖에서
100리(약 40㎞) 이내가 입지의 첫 번째 기준이었다.
실제로 북한 지역에 있는 후릉(厚陵), 제릉(齊陵)과 경기도 여주의 영릉(英陵·寧陵),
강원도 영월의 장릉(莊陵)을 제외하면..
나머지 왕릉은 모두 서울 사대문으로부터 100리 안에 조성되어 있다.
능역의 구조는 각종 제례 절차를 수행하는 데 적합하도록
일정한 형식을 갖추어 '진입공간, 제례공간, 전이공간, 능침공간'을
기본 구조로 한다.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와
좌청룡 우백호의 풍수를 따르고,
뒤의 주산(主山)과 앞의 조산(朝山) 등 두 겹으로 둘러싼 산을 경계로 삼아..
그 안의 모든 마을과 건축물, 그리고 개인 묘역을 다른 곳으로 이전해
넓은 녹지를 조성했다...
능역은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시설로부터 격리하고, 그 범위도 차츰 확대되었다.
처음에는 봉분을 중심으로 사방 100보(步)를 능역으로 했다가
태종 때 161보로, 현종 때는 200보로 늘어났다.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무덤의 형태는 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 만들어진
고인돌이다.
삼국시대에는 무덤 건축의 원칙이 수립되었고,
특히, 신라 시대에는 한국 특유의 무덤 체계가 발전했다.
목재로 안쪽을 댄 넓은 구덩이를 마련해 돌로 채운 다음
흙으로 덮는 고분 방식이 그것이다.
특정한 왕이나 그 자손들의 염원을 반영한 몇몇 변형도 있지만..
대체로 조선왕조의 왕릉 건축은 일관성을 지니고 있다.
고려와 비교했을 때, 조선왕조 때 건축된 왕릉은
언덕 위에 조성되었으며,
맨 위쪽의 매장지, 중간 지대, 아래쪽 단의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조선왕릉은 건축의 조화로운 총체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로,
한국과 동아시아 무덤 발전의 중요한 단계를 보여 준다.
왕릉은.. 매우 특별하거나 규범화된 건축물, 구조물 요소들의
배치를 잘 보여 주기도 한다.
이미 언급한 바..
조선 왕릉은 대부분 서울 외곽 및 경기도 일원에 분포돼 있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 의해
왕릉을 선정하는 기본 원칙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모든 왕릉이 이 규정을 지키고 있는 건 아니다.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 사도 세자와 정조 대왕의 능인 융릉·건릉은
40킬로미터 밖에 능이 있다.
그 이유는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땅을 선택해 무덤을 쓰다 보니,
당시의 법을 어긴 셈이 된 것이다.
또한,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의 능인 장릉은
규정에서 한참을 벗어난 강원도 영월에 있다.
단종애사...
단종은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어.. 작은아버지인 수양대군(세조)의 쿠데타로
왕위에서 쫓겨나, 영월에서 귀양을 살던 도중..
살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40구의 조선왕릉을
대략 살펴보자...
영릉은 세종대왕과 그의 부인인 소헌왕후의 무덤이며,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에 소재한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32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훈민정음 창제·집현전 설치·북방 영토 개척·측우기 제작 등 다방면에 걸쳐 큰 업적을 남긴 어진 왕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모두가 ‘세종대왕’이라며 그를 칭송한다.
소헌왕후는 세종과 금실이 좋았던 부인으로, 슬하에 8남 2녀를 두어
조선의 왕비들 중 자녀를 가장 많이 출산한 왕비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세종대왕의 영릉 옆에는
17대 임금인 효종과 인선왕후의 ‘영릉’이 자리 잡고 있다.
같은 이름이지만, 한자는 물론 다르다.
세종의 무덤은 ‘英陵(영릉)’으로 쓰고,
효종의 무덤은 ‘寧陵(영릉)’으로 쓴다.
조선의 7대 임금인 세조와 그의 부인인 정희왕후의 무덤인
광릉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 소재한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소재한 선릉은
조선의 9대 임금인 성종과 그의 부인인 정현왕후의 무덤이다.
동구릉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소재한다.
서울의 동쪽 지역에 9개의 왕릉이 함께 있어서 ‘동구릉’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건원릉, 현릉, 목릉, 휘릉, 숭릉, 혜릉, 원릉, 경릉, 수릉이 함께 있다.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위치한 태릉은
조선의 11대 임금인 중종의 두 번째 부인 문정왕후의 무덤이다.
문정왕후는 아들인 명종이 12세에 왕 위에 오르자, 어린 왕을 대신해서
8년 동안 대신 나랏일을 보살폈던 여장부였다.
태릉 옆에 있는 ‘강릉’은 그녀의 아들인 명종과 인순왕후의 무덤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서오릉.
서울 성곽의 서쪽에 다섯 왕릉이 함께 있어서 ‘서오릉’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세조의 장남으로.. 왕위 계승자였지만, 일찍 죽어 왕이 되지 못한
덕종과 그의 부인 소혜왕후의 능인 경릉과,
창릉, 명릉, 익릉, 홍릉이 함께 있다.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에 소재한 융릉은
영조의 아들인 사도 세자와 그의 부인인 헌경왕후가
함께 묻혀 있는 무덤이다.
건릉은 22대 임금 정조와 효의왕후의 무덤이다...
우리나라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조선왕릉은
선조와 그 업적을 기리고 존경을 표하며, 왕실의 권위를 다지는 한편,
선조의 넋을 사기(邪氣)로부터 보호하고 능묘의 훼손을 막는 역할을 했다.
왕릉에는 매장지만 있는 게 아니라, 의례를 위한 장소와 출입문도 있다.
봉분뿐만 아니라 T자형의 목조 제실, 비각, 왕실 주방, 수호군(守護軍)의 집,
홍살문, 무덤지기인 보인(保人)의 집을 포함한 필수적인 부속 건물이 있다.
왕릉 주변은 다양한 인물과 동물을 조각한 석물로 장식되어 있다.
고즈넉한 ‘조선왕릉’은...
그저 ‘무덤’이 아닌.. 거대한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조선왕릉은 5,000년에 걸친 한반도 왕실 무덤 건축의 완성이다.
독특한 전각 및 오브제로 이루어진 조선왕릉은...
조선왕조의 과거 역사를 상기시키는 조화로운 총체이기도 하다...
‘우리의 조선왕릉’은 이제...
‘세계의 문화유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