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냥
매사냥은 야생 상태에서 사냥을 위해 매를 사육하고 조련하는 전통적인 활동이다. 아시아에서 발원하여 무역과 문화교류를 통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됐으며, 과거에 매사냥은 식량 확보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자연과의 융화를 추구하는 야외활동을 자리매김 했으며 60개 이상 국가에서 전승되고 있다.
매는 한로(寒露)동지(冬至) 사이에 잡아서 길들인 후 겨울 동안 사냥에 나간다. 겨울이 되면 야산에 매 그물을 쳐서 매를 잡는데, 처음 잡은 매는 야성이 강하여 매섭게 날뛰기 때문에 숙달된 봉받이가 길들이기를 한다. 매를 길들이기 위해서 방안에 가두어 키우는데, 이를 ‘매방’이라고 한다. 매를 길들이는 매 주인은 매방에서 매와 함께 지내며 매와 친근해지도록 한다. 매사냥은 개인이 아니라 팀을 이루어서 하며, 꿩을 몰아주는 몰이꾼(털이꾼), 매를 다루는 봉받이, 매가 날아가는 방향을 봐주는 배꾼으로 구성되고 있다. ‘시치미 떼다’라는 속담도 매사냥에서 나왔는데, 매 주인이 자신의 매임을 표시하기 위해 붙이는 이름표(소뿔을 갈아 길이 5㎝ 정도의 조각에 이름을 새김)를 ‘시치미’라고 한다.
매사냥꾼들의 문화적 배경은 다양하지만, 이들은 보편적인 가치와 전통, 관습을 공유하고 있다. 매사냥은 멘토링, 가족 내 학습, 공식적인 훈련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하나의 문화적 전통으로 세대를 이어 전승되고 있다.
매사냥은 2000년 대전, 2007년 전북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으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11개국이 참여하여 공동등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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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무형유산 매사냥
나레이션 : “바람도 쉬여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여 넘는 고개 山陣(산진)이, 水眞(수진)이, 海東靑(해동청), 보라매도 다 쉬여 넘는 高峯(고봉) 長城嶺(장성령)고개 그 너머 님이 왓다 하면 나는 아니 한 번도 쉬여 넘어가리라. ”
우리나라의 ‘매사냥’은 이 시조가 지어진 조선시대보다 훨씬 앞선 고대부터 존재해 왔다. 전통적인 사냥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매를 길들여 꿩이나 토끼 등을 잡는 ‘매사냥’은 특히나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매사냥 그림이나 『삼국유사』,『삼국사기』등의 매사냥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매사냥이 성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매사냥은 특히 귀족층 사이에서 성행해, 고려시대에는 매의 사육 및 매사냥을 담당하는 관청 ‘응방(鷹坊)’을 두기까지 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매사냥.. 그 명맥을 잇고 있는 장본인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매사냥’. 그 기능보유자 ‘박용순 응사’가 바로 그이다.
고려 충렬왕때 설치한 응방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나 백성들에 대한 부담이 커서 존폐여부에 논란도 잦았다고 한다. 그러나 매사냥은 민간에도 크게 확산이되 일제시대에는 거의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인터뷰 : 박용순 응사
고려 충렬왕때는 매를 포획하고 길들이고 사냥하는 공식정부기관인 응방을 설치했어요 . 그 영향이 몽골의 황제들이 우리매를 해동청매를 좋아하니까 매를 잡아서 조공으로도 붙이고, 옛날에 이런말이 있습니다.
일응, 이마, 삼첩 남자들의 3대 즐거움입니다. 매를 응이라 합니다. 매를 부리는 사람을 응사라 합니다. 매응자..
자, 첫째가 일응 - 매사냥이 최고고, 둘째가 말타는거, 마..나레이션 : 우리의 소중한 매사냥은 2010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다.
인터뷰 : 박용순 응사
2010년도에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에 한국매사냥이 등재가 됐습니다. 이 동양권에서는 우리 대한민국하고 몽골하고 2개국이 등재가 됐고요, 그 다음에 스페인이라든가, 여러 11개국이 공동 등재가 됐는데..나레이션 : 매와 매사냥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박용순 응사는
인터뷰 : 박용순 응사
저는 본격적으로 매를 만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이 시골이기 때문에 산에 놀러갔다가 새끼 매를 주워와 가지고 인연이 됐습니다. 그래서 got수로 상당히 됐죠.나레이션 : 금산에 유명한 매사냥꾼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갔다. 그 금산의 매사냥꾼은 다름 아닌 ‘강종석 씨’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매사냥으로 일가를 이룬 인물로, 매사냥 기능보유자이기도 했다. 박 응사는 그를 찾아가 5~6년에 걸쳐 매사냥을 배웠다고 한다. 박용순 응사는 청년기를 거쳐 장년기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매사냥을 하면서 60여마리의 야생매를 받았다고 한다. 한번 받은 매는 그의 손길을 통해 사냥매로 길들여지고 그와 함께 사냥을 했다.
인터뷰 : 박용순 응사
절대 매사냥 하는 사람은 매를 사랑해야만 할 수 있어요, 진심으로 아끼고, 그렇지 않으면 매는 지능보다 본능이 앞서기 때문에 직감이 발달되어있어요 저를 싫어하는지 다 알아.. 이렇게 프리로 사냥 나와서 꿩 잡기 싫으면 딴 데로 날아가면 그뿐인데 그렇지 않잖아요 그건 그만큼 정을 줬고, 신뢰가 쌓였기 때문에 그런 거다. 그래서 진정한 응사란 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응사이다 . 그래서 매사냥은 80%가 정신적인 거고, 20%가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겁니다.나레이션 : 매사냥을 하고 매와 함께 살아가게 되면서는 매가 머무는 공간에 각종 도구를 직접제작해서 매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꾸미고, 지침이나 방울을 직접 만들어 매에 달아주는 일도 중요한 일과가 된다.
인터뷰 : 박용순 응사
첫째, 이 맨손에 받으면 매의 발톱이 아주 빼쪽해서 갈고리 같아서 상처가 나겠죠, 그래서 요런 장갑이 있어야 됩니다.
날림줄이 있어야 됩니다. 날림줄이, 이건 이동식입니다. 공간만 있으면 다리에 묶어서는 언제든지 훈련을 할수 있죠, 못 도망가게..
그담에 장소가 이렇게 있으면, 이런 T자로 해서 길게 링을 매가지고 왔다갔다할 수 있게끔, 요런 고정된 훈련장소가 있으면 고정줄을 매고요, 요건 순 우리말로는 멍텅구 라고해요. 멍텅구..영어로는 루어낚시 할 때 루어라고도하구요, 동서공이 다 썼습니다.
그래서 이건 꿩날개를 붙여가지고 이걸 움직임으로서 매가 자극해서 바로 오게끔하는 멍텅구.나레이션 : ‘참매’는 나이나 조련 유무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일 년 미만의 매를 ‘보라매’라 하고 1년에서 2년 사이의 매를 ‘초진이’라 한다. 3년째 되는 매를 ‘재진이’라 하며 야생의 매를 ‘산진이’라 부르고 매사냥꾼에게 훈련받은 매를 ‘수진이’라고 한다.
인터뷰 : 박용순 응사 요 매는 참매의 유조입니다. 태어난 지 1년이 안된 햇매, 올새낀데, 덩치는 다 컸어요, 사람으로 비교하면 청소년 시기라고하면 됩니다. 고등학생정도.
그래서 요놈이 내년 가서 털갈이가 들어가면 새까맣게 되고, 등이 까맣게 되고, 배가 하얗고 가로무늬로 변합니다. 완잔히 다른 매가 되요. 그래서 요때는 아주 호기심도 많고 경계심도 많고, 사람도 그렇잖아요 청소년들 호기심이 많듯이 활동량이 왕성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가을추수가 끝나면 보라매를 받아가지고 잘 훈련을 시켜서 사냥에 이용했습니다.
요 매는 고대부터 한국전통 매사냥에 쓰이는 학명은 참매입니다. 민간에서는 수진이 라고도 합니다. 손수자 묵을진자 손에서 묵혀서 길들인 매, 수진이 그렇게 부르고요, 주로 사냥이 꿩을 잘 잡으니까 시골어르신들은 꿩매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고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전통매사냥에 활용한 그런 매입니다.
이게 바로 송골매, 일반인들은 송골매가 뭔지 몰라요. 그래서 이게 송골매고요. 지구에서 가장 빠른 새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테스트를 해보니까, 높은데 비행기를 타고 가서 먹이에 무거운 쇳덩이를 달아 던지는데 그걸 쫓아가는 속도가 370키로 까지 체크가 됐어요. 이 속도는 우주 왕복선이 이착륙할 때 속도와 맞먹습니다. 그래서 일반 수리과에 없는 콧구멍에 혹 같은게 있어요 중앙에.. 하강하면서도 호흡장애를 방지하기 위해서 공기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해요. 그리고 또 특히 수리과에는 없는 사람 송곳니 같은 치상돌기가 툭 튀어나와있어요 부리칼 이라고 하는데. 이놈은 죽일 때 목뼈를 탁 물어서 일격에 즉사를 시킵니다. 참매는 닥치는 데로 뜯는데 이놈은 생물학적으로 더 진화가 됐다고 보죠, 그러니까 킬러 중에 킬러라고 보면 됩니다.나레이션 : 매사냥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기 이전, 2000년 2월에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8호로 지정 되었다.
매사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되고, 박 응사 같은 명인의 열정이 이어지고도 있지만.. 아직도, 매사냥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고, 심지어는 ‘매를 사냥하는 것’을 ‘매사냥으로 오인’하는 사람들도 많다. 매사냥이 대중적으로 널리, 제대로 인식되기까지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한 실정이고, 여러 가지로 현실 여건이 열악하기도 하다.
외국의 경우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는 매 전분병원을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체코, 네덜란드 등 많은 국가들도 국가적 차원의 매사냥센터를 운영, 매사냥 연구는 물론 종 번식, 복원, 질병치료, 재활 등 수준 높은 동물복지 프로그램과 청소년이나 일반 탐방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공인된 매사냥 기능 보유자는 대전의 박용순 응사와 전북 진안의 박정오 응사 둘 뿐이다. 그리고 주로 해당 지방에서 시연을 하기 때문에, 매사냥을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접하기가 어렵다.인터뷰 : 이건석 회장
실질적으로 매사냥이 일반인이 접하기는 굉장히 힘들거든요, 왜 그러냐면 여러 가지 제약이 많아요, 그런 법적인 제약을 많이 풀어줘야지 정부에서나 관계자들이 풀어줘야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게 선 과제로 되어야만 보편화될 수 있을 것 같아요.인터뷰 : 이옥천 부회장
건강도 좀 안 좋았는데 자연을 벗 삼아 나와서 산으로 들로 다니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건강도 좋아지고, 그전에는 100m, 200m만 가도 헉헉대고 못갈 정도였어요. 이제는 웬만한 산하나 정도는 후딱후딱 넘다시피 하고, 매를 따라 하다보면 이렇게 제 건강이 좋아진 거 같아요.나레이션 : 박 응사는 뜻을 같이하는 몇몇 후학들과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 라는 단체를 만들어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꾸준히 전승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유네스코 등재 이후에는.. 언론매체에 종종 노출이 되어, 이제는 제법 알아 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매사냥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늘었다는 것이... 박 응사의 큰 기쁨이라고 한다. 그밖에 각종 학술단체 강연 등을 통해서도, 단순한 놀이 문화로 폄하되었던 우리의 매사냥을 인문학적으로 승화시키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인터뷰 : 박 응사 마무리
유네스코에 우리 매사냥이 2010년도에 지정이 되고나서 우리 이수자 3명이 매사육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게 최초에요. 제가 10년이 넘게 해왔던 게 결실을 맺은거에요. 그래서 앞으로 우리 매사냥이 전승할려면은 많은 사람이 전승에 좀 관심을 가지고 동참을 해야됩니다.
옛날에 그 멋진 매사냥의 부활을 유네스코등재를 계기로 세계에서 인정받은 우리 매사냥이 전승 발전되기를 염원하고 소망합니다.나레이션 : 수천 년 전부터 우리와 함께한 매사냥. 매와 함께 거침없이 하늘을 누비고 매처럼 역사를 응시해온 대한민국. 매사냥은 우리의 기억 속에 멀어져갔지만 이제다시 우리의 하늘과 마음에 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