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우리나라의 인쇄술의 시원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경의 유통을 위해 필사가 성행했는데, 필사의 방법이 목판 인쇄로 발전하면서 많은 경전이 사찰을 중심으로 간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발견됨에 따라 늦어도 8세기 중엽에는 목판 인쇄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751년(신라 경덕왕 10) 무렵에 간행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본이다.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이며 1행 8~9자의 다라니경문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불경이 봉안된 석가탑이 751년 김대성에 의해 불국사가 중창될 때 세워졌으므로 이 불경은 그 무렵 간행된 것으로 인정된다. 또한 본문 가운데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 집권 당시만 썼던 글자들이 발견되어, 간행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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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정광대다라니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도화라국(都貨邏國)의 승려인 미타산(彌陀山)이 법장(法藏)과 함께 704년경에 한역한 것이다. 죄를 없애고 수명을 늘리기 위한 법을 구하기 위해 옛탑을 수리하거나 조그마한 탑을 만들어 그 속에 공양하며, 법에 의하여 신주(神呪)를 염송하면 수복을 얻고 성불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목판 인쇄술의 성격과 특징을 완전하게 갖추고 있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본이라는 점에서 세계 인쇄사에서 가치가 있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1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
대장경은 경(經), 율(律), 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이 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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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
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
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
국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현종 때 의천이 만든 초조대장경이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 하나가 오자·탈자 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기록유산이다.
2국보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불교경전, 고승의 저술, 시문집 등이 새겨진 목판이다. 이 목판은 국가기관인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새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국보)과는 달리, 지방관청이나 절에서 새긴 것이다. 현재 해인사 대장경판전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寺刊板殿)에 보관하고 있다.
이 목판에는 『금강경』, 『화엄경』 등의 대승경전과 신라·고려·중국의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들이 있는데, 경전류는 대부분 간행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불교경전의 유통 등 불교신앙의 경향을 알 수 있다.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 등은 비록 간행기록이 없고 전권을 갖추지 못한 것이 많으나, 그 내용이 전하지 않거나 역사적으로 희귀한 자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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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 -
국보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 -
국보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 -
국보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
3보물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榮州 浮石寺 高麗木板)
이 판은 부석사에 있는『화엄경』정원본 40권, 진본 60권, 주본 80권 등 3종의 대방광불화엄경을 나무판에 새긴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정원본(貞元本)은 반야가 번역한 화엄경 40권을 가리키고, 진본(晋本)은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화엄경 60권을, 주본(周本)은 실차난타가 번역한 화엄경 80권을 가리킨다. 이 판은 모두 합쳐 634판이며 한 줄에 34자씩 글자를 배열한 특이한 형식이다.
13∼14세기경 거란에서 불경을 수입하여 나무판에 다시 새긴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전해지는 유일한 거란본 계열의 각판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우리나라 화엄종의 창시자인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화엄사상을 발전시켜 나간 부석사에 소장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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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榮州 浮石寺 高麗木板) -
보물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榮州 浮石寺 高麗木板) -
보물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榮州 浮石寺 高麗木板) -
보물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榮州 浮石寺 高麗木板)
조선시대
1관 판
대장경은 경(經), 율(律), 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중앙 및 지방관서에서 간행한 책으로, 고려시대에는 지방관서가 명하여 새긴 판목을 중앙에 올려 인쇄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지방관서에서 필요한 책을 임의대로 판각하여 책을 보급하였다. 또한 중앙관서에는 활자로 책을 다양하게 찍어 각 지방관서에 한 부씩 보내주면, 지방관서에서 목판에 번각(飜刻)하여 필요에 따라 인출하여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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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월인석보목판 -
보물 대동운부군옥목판 및 고본 -
보물 배자예부운략 목판 -
시도유형문화유산 (충북) 광국지경록 목판
2사찰판
사찰이 공양과 포교를 위해 간행하였거나, 신도들이 공덕과 명복을 빌기 위해 시주로 간행한 책을 일컫는다. 주로 불교 신앙 및 의식에 필요한 것들로 불교 경전과 고승의 법어를 저술하는데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일반인들의 시문집 등이 간행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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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유산 (강원) 신흥사경판 -
보물 불설대보부모은중경판 -
시도유형문화유산 (경남) 통도사경판 -
시도유형문화유산 (경남) 창녕 관룡사 사적기
3사원판
사우(祠宇)나 서원(書院) 등에서 필요한 책을 간행하여 서로 주고 받았으나, 경제적인 문제로 간행은 별로 활기를 띄지 못했다, 대체적으로 판각의 기법도 떨어지는 편이어서 인쇄된 판본을 보면 조잡하여 품위가 사뭇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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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자료 (충남) 외암선생문집판각 -
시도유형문화유산 (대구) 명심보감판본 -
시도유형문화유산 (대전) 상제집략판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충북) 송원화동사합편강목 목판
4사가판
개인적인 목적에서 자비로 대가를 받지 않고 책을 펴내는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불서와 문집류,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시문집, 전기, 족보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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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유형문화유산 (경남) 대전선생실기책판 -
시도유형문화유산 (대전) 용천련고판목 -
시도유형문화유산 (충북) 활재선생문집 목판 -
시도유형문화유산 (충북) 눌재강수유고 목판
5시전지판
시(詩)나 편지를 쓰기 위하여 만든 종이에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연화, 화조, 모란, 동물모양 등을 넣기 위하여 만든 판목이다. 임진왜란 이전의 시전지는 대개 굵은 테두리 안에 매 행을 죽간 모양으로 아래위를 공굴린판 무늬를 썼다. 17세기에는 오른쪽을 약간 비워두고 거시에 매화와 난초를 절지(折枝) 문양을 넣는 ‘절지판형’ 시정지가 유행하였다. 18.19세기에는 시전지판이 매우 다양하여 ‘절지판형’의 전통과 단독의 꽃 문양이 시전자판에 크게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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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연화문시전지, 백로연화문시전비 인본 -
연화문시전지, 연화문시전지 인본
6능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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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오복을 상징하는 박쥐 5마리의 문양판
일반적으로 책겉장에 마름꼴 모양의 아름다운 무늬를 박아 내는 판목을 일컫는다. 그러나 능화판이라 불리는 목각판 중에는 책 표장에 사용되었던 것 이외에도 벽지나 반자판에 무늬를 박아 넣을 때 사용하는 것과 보자기에 날염하여 무늬를 넣는 채화판, 또는 날염판 등이 있다. 능화판이란 책판의 용도로 쓰이면서 붙인 이름으로 책의 표지에 무늬를 장식하는 압판을 말한다. 그래서 능화판은 보자기 등의 헝겊이나 종이에 무늬를 찍는 날염판과 채화판과는 구분된다. 능화판을 이용하여 도드라지게 무늬를 나타내는 효과는 마치 요즘 양장 표지에 프레스를 이용하여 무늬를 눌러 입체적 효과를 나타내는 것과 비슷하다.
능화판의 제작시기를 판별하는 방법으로는 각 목판에 새겨진 간기나 소장처의 명문으로 파악하는 방법이 있고, 능화판으로 장식된 책의 간행연대와 비교하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목판에 명문이 새겨진 경우는 거의 드물고, 능화판과 일치하는 책표지 문양을 찾는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처음 능화판이 사용된 시기를 고려시대로 볼 수 있지만 전하는 실물이나 기록이 나타난 문헌이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 능화판의 시작은 소량으로 베끼거나 인쇄한 사경에 그렸던 표지그림이 많은 책 수요에 따라 다량 제작방법으로 바뀌면서 일반화 된 것이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꾸준히 사용되다가 근대 서양식 제본기술이 들어오면서 점차 사라졌다. 최근 복고풍의 족보 간행이나 표지 디자인에 조금씩 응용되고 있다.
7기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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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수선전도목판 -
보물 곤여전도목판 -
시도유형문화유산 (경기) 궐리사성적도 -
시도유형문화유산 (전북) 여래불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