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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문화재자료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軍浦 東來 鄭氏 東來君派 宗宅)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1곽
지정(등록)일 2000.03.24
소 재 지 경기 군포시 속달로110번길 20-11 (속달동)
시 대 조선후기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문***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경기도 군포시 문화체육과 문화팀 031-390-0667
안내판 설명
개별안내판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군포 도래정씨 동래군파의 종가로 조선 중기의 문신 정광보(鄭光輔)1457-1524)가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지은 건물이다. 그는 파시조인 동래부원군 정난종(鄭蘭宗)1433-1489의 큰 아들로 본 가옥의 맞은편 산 중턱에 정난종의 묘가있어 이 마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건물은 안채와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광채, 마방채, 사당채 등 6개 동이 있다. 큰 사랑채의 평면 분할방식 및 행사청의 구성과 작은 사랑채의 위치 설정 등이 독창적이고 기능성을 중시한 조선후기 사대부의 살림집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건축양식으로 평가된다.

문화재 설명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은 시조인 동래부원군 정난종鄭蘭宗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이 있는 종갓집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정난종의 아들 정광보鄭光輔가 아버지 무덤을 만들어진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이 종택은 중앙에 ㄱ자로 안채를 배치하고, 주변으로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를 두었으며, 남쪽으로 곳간인 광채를 배치하였다. 북쪽으로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 있고, 남쪽 바깥쪽으로는 마굿간인 마방채를 두었다. 사람의 생활공간을 중심에 두고 주변에 제례를 준비하거나, 손님의 이동을 맞이하는 공간을 배치하여 종갓집의 기능성이 엿보인다.

동래군파 종택의 안채는 상량문에 의하면 정조 7년(1783)에 세워지고, 사랑채는 고종 14년(1877)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Owned by the head family of the Dongnaegun Branch of the Dongnae Jeong clan, this historic house contains a family shrine dedicated to the ancestor tablet of Jeong Nan-jong, who is also known by the honorary title of Dongnae Buwongun. The house is also responsible for maintaining the Jeong Nan-jong family cemetery. The house consists of an inner house (anchae) at the center, with two family guesthouses (keunsarangchae and jageunsarangchae) and a storehouse (gwangchae) built around it. The family shrine is located in the north, while the stable is situated to the south of the house. The inner house was built in 1783 and it is presumed that the guesthouses were built in 1877.

京畿道军浦市速达村郑家庄的郑氏东莱君派宗宅。东莱君派始于郑兰宗,他于1467年作为黄海道观察使在平定李施爱之乱时立了大功,1471年(成宗2年)作为佐理功臣被封为东莱君。古宅后面的修理山山脚下有其子郑光辅、郑光弼的墓域。该宗宅基于儒教式空间秩序,注重实际用途,这是朝鲜后期住宅的时代特征。 现存建筑物有正房和舍廊房、小舍廊房、行廊房等四幢,原来舍廊院子外侧有行廊,小舍廊房后面有草堂,正房后面有祠堂、牛马棚等。整个布局形式以“ㄱ”字形正房为中心,舍廊房和门房呈“ㄱ”字形围绕着南面和西面。舍廊房建于1877年(高宗14年),正房在大厅的天花板上记录着上梁文,从“圣上即位七年”来看,可推测其建于1783年(正祖7年)。 该房屋具有朝鲜后期住宅的典型特征,舍廊房的平面分割方式、典礼厅的结构、小舍廊房的位置等都具有独创性且注重功能性,作为朝鲜后期的建筑风格具有较高的保存价值。

キョンギ(京畿)道クンポ(軍浦)市ソクタルマウル(村)の集姓村(同姓の人が集まって住んでいる村)トンレ(東萊)チョン(鄭)氏トンレグンパ(東萊君派)の宗宅である。東萊君派の始祖はチョン・ナンジョン(鄭蘭宗)であるが、彼は1467年ファンへ(黄海)道の観察使としてイ・シエ(李施愛)の乱の平定に大きく貢献し、1471年(成宗2年)に佐理功臣として東萊郡に封ぜられた。古宅の後方、スリサン(修理山)の麓にチョン・ナンジョン(鄭蘭宗)と彼の息子であるチョン・グァンボ(鄭光輔)およびチョン・グァンピル(鄭光弼)の墓域が作られている。儒教的空間秩序を基にしつつ実用性も重視するという朝鮮後期家屋の時代的特徴を取り入れている。 現在残っている建物は母屋と寝殿、小さな寝殿、門屋の4棟であるが、本来は寝殿の前の庭の外側に門屋、小さな寝殿の後ろに草堂、母屋の後ろに祠堂、牛小屋などがあった。全体配置は、逆L字型母屋を中心に、寝殿と門屋が同様の形で南側と西側を取り囲んでいる。寝殿は1877年(高宗14年)に建てられたが、母屋は1783年(正祖7年)に建てられたとみられる。板の間の広間の天井に掲げられた上樑文(棟上げ時に書く祝文)に「聖上即位七年」と記されているためだ。 この家屋は朝鮮後期家屋としての典型的な特徴を保っており、寝殿の平面の分割方式、ヘンサチョン(部屋)の構成、小さな寝殿の位置設定などが独創的で、機能性を重視しており、朝鮮後期の建築様式として保存価値が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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