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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진천 금성대군 사당 (鎭川 錦城大君 祠堂)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90.12.14
소 재 지 충북 진천군 초평면 수의1길 75-7 (용기리)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이***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충청북도 진천군 문화홍보체육과 043-539-3624
안내판 설명
개별안내판

진천 금성 대군 사당 (鎭川 錦城 大君 祠堂) 충청북도 문화재 자료 제10호 이곳은 금성 대군 이유(李瑜, 1426 ~ 1457)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영조 16년(1740)에 처음 세웠으며, 몇차례 수리하고, 1974년에 삼문과 담장을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금성 대군은 세종 대왕의 여섯째 아들로 세조 2년(1456)에 성삼문 등 사육신(死六臣)의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순흥(順興)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다시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반역 행위가 발각되어 이듬해에 죽임을 당했다. 영조 14년(1738)에 신분이 회복되었으며, 임금은 ‘정민(貞愍)’ 이라는 이름을 주어 그를 기렸다.

문화재 설명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1426∼1457)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어머니는 소헌왕후이며 이름은 유(瑜)이고, 1433년에 금성대군으로 봉해졌다. 형인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왕이 되자 조카인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반역죄로 처형당하였다.

사당은 영조 16년(1740)에 세운 것이고 1974년에 보수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조사연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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