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심즙 신도비 (沈諿 神道碑)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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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1기 / 127.5㎡ |
지정(등록)일 | 1995.11.15 |
소 재 지 | 인천광역시 서구 경명대로 725-26 (공촌동) |
소유자(소유단체) | 청송심씨첨정공파종중회 |
관리자(관리단체) | 청송심씨첨정공파종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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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神道)란 죽은 사람의 묘로(墓路)를 뜻하며,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무덤 앞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운 비석을 가리킨다. 신도비는 중국 한대부터 종2품 이상의 관직에 있었던 사람의 무덤 근처나 큰 길가에 세우던 돌비로서 한나라 양 진의 <고대위양공지신도비>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임금이나 고관의 무덤 동남쪽에 남쪽을 향하여 세운다. 대체로 고려시대에 시작된 듯하나 <동문선> 기타의 문집에 그 비문이 전해질 뿐으로, 3품 이상인 사람의 무덤에 세웠다.조선 시대의 제도에서는 2품 이상에 한하여 세울 수 있게 되었으며, 양주에 있는 태조의 건원릉의 것을 비롯하여 안산의 정난종 신도비 등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왕릉에 신도비를 세우는것은 문종이 금지하였으며, 한편 공신.석유 등에 대하여는 왕명으로 신도비를 세우게 한 일도 있었다. 조선시대의 신도비는 2품 이상의 품계를 지닌 자에 한해 세우는 것으로 제도화되었다.
이 신도비는 조선 인조 때의 문신 심즙(1569~1644)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졌다. 심즙의 자는 자순(子順)이고 호는 남애(南崖),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1597년(선조 30) 문과에 급제한 뒤 형조·공조·예조 판서를 역임하였고, 이괄의 난이 일어나 인조가 공주로 몽진(蒙塵)할 때 호종(扈從)하여 호종공신이 되었다.
심즙의 묘는 원래 경기도 시흥시에 있다가 인천시 서구 공촌동으로 이장하였으며, 이때 신도비도 함께 옮겼다. 비는 사각형의 받침돌[비대(碑臺)] 위에 길쭉한 직사각형의 몸돌[비신석(碑身石)]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돌[비개석(碑蓋石)]을 올린 모습이다. 비의 전체 높이는 1.9m이고, 너비 0.85m, 두께 0.53m이다.
거유(巨儒) 송시열(宋時烈)이 비문을 짓고, 홍봉조(洪鳳祚:1680∼1760)가 글씨를 썼으며, 유척기(兪拓基)가 비에 새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