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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속문화재

이천 어재연 고택 (利川 魚在淵 古宅)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탄생지
수량/면적 1필지/2,879㎡
지정(등록)일 1984.01.14
소 재 지 경기 이천시 율면 일생로897번길 22-47 (산성리)
시 대 19세기초
소유자(소유단체) 어*** 
관리자(관리단체) 어*** 
문화재 담당부서 : 근대문화재과- 상세문의
안내판 설명
개별안내판

어재연 장군 생가 魚在淵 將軍 生家 중요민속자료 127 어재연 장군 생가는 이천시 율면 산성1리에 위치하고 있다. 사방으로 개방된 바깥마당이 건물 전면에 배치되어 있으며 동남쪽에서 진입하도록 되어 있다. 일자형 사랑채가 바깥마당에 면하여 앉고, 사랑방 뒤의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 안채가 집안의 중심에 위치한다. 안마당 동쪽으로 광채가 자리해서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안대문은 광채의 한쪽을 이용해서 동선을 꺽어 안마당으로 진입하게 한다. 사랑채는 4칸 전후퇴의 우진각 초가지붕 집이다. 평면은 서쪽으로부터 부엌, 2칸 구들,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구조는 원래 3량집이었으나, 앞뒤로 다시 평주를 세우고 퇴를 덧달아 내었다. 앞퇴는 퇴보없이 토막보만을 기둥머리에 맞추고 부엌과 안방, 대청은 모두 2칸으로 부엌 광이나 골방은 별도로 두지 않고 벽장과 다락을 뒤쪽 칸에 시설하고 앞쪽 칸에는 반칸 정도의 나뭇간을 두었다. 구조는 맞걸이 3량 네모 기둥에 납도리집으로 부엌 상부의 지붕틀을 보면 종도리에 맞춰 우미량을 처마도리까지 걸친 다음 추녀 머리를 얹었다. 지붕은 초가집으로 거의 박공집에 가깝다. 어재인 장군 생가는 신미양요 당시인 19세기 초 건물로 추정되며, 안채, 사랑채, 광채는 모두 변형없이 비교적 잘 보존되었고 건물의 질도 우수하다. 광채는 20세기 초 건물로 여겨지며 사랑채 역시 이 때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어재연 장군은 근세 조선말기 구미열강에 의해 조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을 때 서해안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한 ‘이천의 별’이다.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성우(性于), 아버지는 용인(用仁)이다. 1841년(헌종 7) 정시무과에 급제한 뒤 훈련원주부ㆍ판관ㆍ첨정ㆍ총위영초관ㆍ형조정랑을 역임한 뒤 1847년 광양현감이 되었다. 재임시 환곡 업무를 공정히 처리하고, 옥사를 잘 다스렸으며, 군기수선을 잘 하여 통정대부로 승급되었다. 1856년(철종 7) 해주진영(海州鎭營) 병마절도사를 거쳐 풍천부사가 되었다. 1862년 대구영장을 거쳐 1864년(고종 1) 장단부사가 되어 공정한 과세를 위해 힘써 고종에게서 표리(表裏)를 하사받았다. 1866년 공충도병마절도사가 되었는데, 그해 프랑스 로즈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해오자, 병사를 이끌고 광성진(廣城鎭)을 방어했다. 이어 회령부사가 되어 도적들을 토벌하고, 관내의 개시(開市)를 복구했으며, 별포대(別砲隊)를 설치해 국경 수비를 튼튼히 했다. 1871년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국 아시아 함대가 조선에 쳐들어오자(신미양요), 4월 15일 진무중군(鎭撫中軍)에 입명되어 600여 명의 각영 포군을 이끌고 광성보(廣城堡)로 급파되었다. 4월 23일과 24일 초지진(草芝鎭)과 덕진진(德津鎭)을 함락한 미군은 4월 25일 광성보를 공격해왔다. 미군이 수륙양면에서 함포사격과 야포사격을 퍼붓고 광성보로 돌입하자 치열한 백병전을 벌이며 적군을 막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한말의 대학자 이건창(李建昌)은 그를 평하여 “청백강정(淸白剛正)해서 이르는 곳마다 이름난 공적을 남겼다. 체격이 장대하고, 절인(絶人)의 힘이 있어서 세상 사람들은 그를 장사(壯士)로 여겼다”고 했다. 병조판서 겸 지삼군부사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수자기(帥字旗)는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당시 강화도 광성보(廣城堡) 전투에서 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가 미국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소장해 오던 가로 4.15m, 세로 4.35m의 대형 군기(軍旗)이다. 깃발 한가운데 장수를 뜻하는 ‘帥’자가 누런 바탕에 검은색으로 적혀 있는 ‘수자기(帥字旗)’는 조선 후기 중앙의 독립 군영 혹은 지방 군사조직의 총 지휘관이 있는 본영(本營)에 꽂는 깃발인데, 외세의 강압에 의한 개항을 거부한 조선왕조의 의지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장렬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어재연 장군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 병사들의 용기와 불굴의 정신을 상징한다. 이 수자기는 미군에 전리품으로 빼앗긴지 136년만인 지난 2007년 10월, 10년간 장기대여 형식으로 한국에 돌아와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서 수장관리하고 있다.

문화재 설명

고종 때의 무관으로 미국 로저스 제독이 지휘하는 군함과 광성진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전사한 어재연(1823∼1871)장군의 생가이다. 1800년대초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초가집이다. 앞에 넓은 마당을 두고 사랑채와 안채·광채가 모여 튼 'ㅁ'자형의 배치구조를 이루고 있다.

광채 옆에 있는 대문을 통하여 들어서면 오른쪽 앞으로 낮은 담이 뻗어있어 안채가 자리한 안마당이 훤히 들여다 보이지 않는다. 그 담의 한 곳을 터서 안채로 통하는 출입구로 사용하였다. 안채는 'ㄱ'자형 구조로 부엌·안방·대청·건넌방이 배치되었고 부엌광이나 골방은 따로 두지 않았다. 툇마루나 쪽마루가 방 앞에 없는 간결한 구조이다. 대문의 왼쪽에 위치하는 '一'자형의 사랑채는 부엌·대청·사랑방으로 되어있다. 대청은 안마당쪽을 막아놓고 바깥마당과 동쪽벽을 터 놓았다. 사랑부엌은 안마당에서만 출입을 할 수 있다. 광채의 뒷모서리에서 뒤로 큼지막하게 돌려진 토담은 집안을 둘러싸고 있다.

전체적으로 여유있게 배치되어 있으며 원형의 변형 없이 비교적 잘 보존된 집이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This house is the birthplace of General Eo Jae-yeon (1823∼1871), who fought against the warship led by Admiral Rogers of the US Navy in Gwangseongjin and died in battle. It is a thatched roof house believed to have been built in the early 1880s. With a large yard in front, the house consists of the sarangchae (men’s quarters), anchae (women’s quarters), and sheds. When one walks in through the gate beside a storage shed, one sees a low fence on the front right side, blocking the view of a courtyard where the anchae is located. An entrance to the anchae is made by tearing down part of the fence. The anchae consists of a kitchen, the anbang (main room), the daecheong (main wooden floor), and a room across from the anbang. It does not have a separate pantry or a small back room. It has a simple structure that does not have a wood-floored veranda beside each room. The sarangchae located on the left side of the gate consists of a kitchen, daecheong, and a room. The daecheong is open to the yard of sarangchae but has no wall on the east side. People can enter the kitchen of the sarangchae only via the yard of the anchae. An earthen fence that starts from the storage shed surrounds the house. On the whole, the house is spaciously arranged and relatively well-preserved, with few changes in its original appearance. ※ Viewing of the cultural property above is usually available anytime but may be limited depending on the owner’s personal circumstances.

高宗时的武官,和美国舰队司令罗杰斯指挥的军舰在广城堡作战时死于战场的鱼在渊(1823∼1871)将军的故居。大约是1800年代初期建盖的草屋。前面有宽阔的院子,舍廊和内宅、库房形成开口的‘ㅁ'字形平面布局。通过库房旁边的大门进入,右侧有比较低矮的隔墙,因此无法清楚地看到内宅所处的内院。该照壁有一开口有通向内宅的入口。内宅呈‘ㄱ'字形结构,设有厨房、卧房、堂屋、傍室,没有另设馔房或抱厦。房屋前面也没有地板檐廊或地板廊子,其结构比较简单。大门左侧的‘一'字形舍廊由厨房、客厅、舍廊房构成。外宅舍廊客厅朝向内院部分是山墙,朝向外院的部分和东西是开放的。舍廊厨房只能从内院出入。从库房后面的弯角处围起的土墙绕着房屋而立。整体结构比较宽绰,原貌几乎没有变形,保存比较良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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