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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양주 대모산성 (楊州 大母山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57,742㎡
지정(등록)일 2013.06.21
소 재 지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789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양주시 
문화재 담당부서 : 보존정책과- 상세문의
안내판 설명
종합안내판

양주대모산성은 양주시 어둔동과 백석읍 방성리 사이에 위치한 해발 210m되는 대모산에 걸쳐있는 삼국시대의 테뫼형 성곽으로 양주산성이라고도 한다. 신라 문무왕 15년(675)에 당나라 20만 대군을 쳐부수고 대승을 거둬 삼국통일을 완수하는 계기가 된 매초성買肖城으로 추정되는 곳 중 하나로서 산성에 대한 성격규명을 위하여 성벽의 축조상태 및 산성내 건물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1980년부터 1998년까지 7차례에 걸쳐 실시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토우土偶와 삼국시대의 각종 그릇이 출토되었고, 활촉과 쇠낫, 도끼, 투겁창, 말재갈, 솥, 보습(삽모양의 쇳조각)을 비롯하여 청동거울과 청동말, 청동도장, 개원통보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德部(덕부), 德部舍(덕부사), 官(관), 草(초), 富部(부부), 大浮雲寺(대부운사), 城(성)’ 등의 명문이 있는 기와를 비롯한 많은 종류의 기와편도 출토되었다. 따라서 이 산성은 삼국시대 이래 사용되어 온 것으로, 현재의 석축은 통일신라와 고려기에 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개별안내판

동문지는 1995년 6차 발굴조사가 진행된 구간으로, 현재는 복토되어 보존되고 있는 상태이다. 성문은 해발 200m에 위치하며, 성문의 형태는 凹자형의 현문식懸門式이다. 6차 발굴조사 결과 토기류 123점, 기와류 8점, 석제품 5점, 철제품 110점, 청동류 3점 등 총 252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발굴당시에는 동문지로 추정되었으나 문지의 위치로 볼 때 남문지가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어, 문지의 정확한 명칭을 위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개별안내판

1980년 1차 발굴조사가 진행된 구간으로 현재는 발굴조사된 유구가 복토되어 있는 상태이다. 성문은 해발 203m의 경사지형에 위치하며, 성 외측에는 북문을 기준으로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성문의 형태는 현문식懸門式이다. 1980년 발굴조사 결과 문구부의 너비는 5.4m이고, 폭은 6.55m이다. 한편 북문지 북측에서 백제 토기가 확인되었는데, 이를 통하여 신라가 이 성을 사용하기 이전 백제 및 그 이전 문화가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개별안내판

1998년 7차 발굴조사가 진행된 구간으로 문지는 해발 185m에 위치하며, 성문의 형태는 현문식懸門式이다. 서문지의 경우 계곡부가 형성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발굴조사 결과 배수로 시설이 확인된 것으로 보아 문지의 역할과 함께 서쪽으로 많은 물이 흐르는 지형을 고려하여 배수의 역할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뚜껑, 대부완臺附盌, 방추차 등 토기류 172점, 기와류 4점, 자기류 7점, 차관 등 철제품 136점, 청동류 8점 등 총 227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문화재 설명

양주 대모산성은『三國史記』,『世宗實錄』에서 매초성(買肖城)의 기사를 근거로 매초성(買肖城)으로 비정(比定) 되기도 하며, 『新增東國輿地勝覽』,『萬機要覽』,『京畿誌』,『京畿邑誌』,『輿圖備志』,『大東地志』등에서 양주 대모성산(大母城山), 대모산성(大母山城)의 기록이 확인된다.

임진강과 한강 유역을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한 대모산성은 주변의 산성 중 주 교통로에 위치하여 단지 방어만을 목적으로 축조된 것이 아니라, 행정치소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복합적 성격의 유적으로, 양주지역의 전술적 요충지 또는 치소로서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장방형으로 가공한 화성암계 변성암으로 높이 약 7.5m 내외의 외벽을 쌓아 올린 다음 그 외부에 삼각형 모양의 단면형태를 띤 4∼5m 높이의 보축을 덧대어 축조한 우수한 축성술과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현문식(懸門式) 성문구조, 축조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성벽 등 6∼7세기의 고대 축성기술을 구체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1980년부터 1998년까지 7차례 이루어진 발굴조사로 635점의 금속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최고 관리 계층이 소유할 수 있었던 청동 팔찌, 청동 도장 등은 대모산성의 위상을 보여주며, 각종 농구류, 공구류 등을 통해 대모산성을 중심으로 그 관할지의 농업·수공업 생산력이 높았고 주변지역에서 생산된 많은 농산물과 수공업품이 대모산성으로 집중·관리되어 물류 거점의 역할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Daemosanseong, presumed by some to be the same fortress as Maechoseong, appearing in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and Sejong Sillok (Annals of King Sejong), is mentioned in quite a few historical records, including Sinjeung dongguk yeoji seungnam (Augmented Survey of the Geography of Korea), Mangi yoram (Essentials of Governance), Gyeonggiji (Chorography of Gyeonggi Province), Yeojueupji (Chorography of Yeoju County), Yeodojiji (Map of Korea), and Daedongjiji (Geography of Korea). Daemosanseong is located at the junction linking the Imjingang River with the Hanggang river valley. Being the only fortress in the environs located near a major transportation route, it appears to have had a dual purpose as a defense structure and the seat for the local administration of the Yangju area. The fortress was built with metamorphic rocks of an igneous type, hewn into a rectangular shape. The walls stand about 7.5m tall and are fronted with reinforcement works that have a triangular cross-section and rise to 4-5m in height. The fortress has a suspended gate and is accessed with the help of a ladder. This fortress, something of a gem of engineering, with mostly intact walls offers valuable glimpses into fortress construction techniques used in 6th-7th century Korea. Meanwhile, seven successive archaeological investigations, conducted here between 1980 and 1998, resulted in the discovery of six hundred thirty-five metal artifacts. The presence of such items as bronze bracelets and seals among these artifacts, which only the highest ranked-officials could own, speaks volumes about the prestige this fortress must have once enjoyed. Further, the various farming implements and tools found here suggest that the area under the jurisdiction of Daemosanseong had high agricultural and industrial productivity, and that produce and products from the environs were brought to and gathered in this fortress, which appears to have also served as a center of logis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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