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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부여 왕흥사지 (扶餘 王興寺址)Wangheungsa Temple Site, Buyeo
분 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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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550,402㎡ |
지정(등록)일 | 2001.02.05 |
소 재 지 | 충남 부여군 규암면 신리 37-2번지 |
시 대 | 백제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부여군 등 |
관리자(관리단체) | 부여군 |
부여 왕흥사지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문헌에 창건(법왕 2년, 600)과 낙성(무왕 35년, 634) 관련 기사가 수록되어 있는 백제시대의 중요한 사찰유적으로서 1934년 왕흥명(王興銘) 기와편이 수습되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2000년부터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발굴조사 결과 목탑지, 금당지를 비롯하여 동·서회랑 및 동·서건물지, 강당지 및 서편부속건물지 등 사역 중심부의 건물지들을 확인하였으며 사역의 축대인 동서석축, 진입시설인 남북석축과 사역 동편 외곽에 백제~고려시대 기와가마터가 확인되었다.
2007년 제8차 발굴조사 중 사리공 내부에서 금제사리병, 은제사리호, 청동사리합의 3중구조로 안치된 사리기가 출토되었다. 청동사리합 동체 외면에는 상·하 양단에 2줄의 음각선을 돌리고 그 안으로 5자 6행 29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었으며 그 내용은 “丁酉年(577) 2월 15일 백제왕 창(昌)이 죽은 왕자를 위해 탑(또는 사찰)을 세우고 본래 사리 2매를 묻었을 때 신의 조화로 셋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왕흥사의 창건과 관련된 내용으로 문헌기록과 차이를 보여 왕흥사 창건시기를 밝히고 나아가 문헌 속 백제사에 대한 재검토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왕흥사지 → 부여 왕흥사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