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선원사지는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도학술조사단이 강화도 일원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처음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 이곳에서 몇 개의 주춧돌을 비롯하여 보상화무늬 전돌, 범자(梵字) 새긴 기와, 지붕에 얹었던 잡상들을 확인하고, 선원면(仙源面) 도감마을, 도감산에 있는 사지이므로 학술적·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어 지역의 연원을 기초하여 1977년에 사적 강화선원사지(江華仙源寺址)로 지정되었다.
동 유적에 대하여 1996년부터 4차례에 걸친 발굴조사(동국대학교박물관) 결과 건물터, 축대, 배수시설 유구와 연화문 기와, 금동탄생불, 청동나한상, 탄화된 금니사경, 묵서사경 등이 출토되어 절터와 관련된 유적으로 규명되고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에서 전하는 고려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선원사(禪源寺)터로 볼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가 확인되지 않아 이에 대하여는 장기적인 조사연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참고로 동 유적에 대한 4차에 걸친 발굴조사(’96년∼’01년) 결과 독립된 건물지 21개소와 부속 행랑지 7개소가 확인되었으며, 건물들은 북고남저의 지형 위에 동서로 긴 4개의 층단을 두고 빼곡히 들어서 있다. 중앙부 대형건물지(기단길이 38m)에는 삼존불을 지탱한 것으로 보이는 불단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5개의 건물지에서 온돌시설이, 그리고 배수시설 등이 확인되었으나 탑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은 건물지가 집중돼 있는 중심구역으로 남북길이 180m, 동서너비 180m정도이다.
출토유물은 자기류, 기와류, 소형 청동탄생불, 금동나한상, 탄화된 사경편 등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자기류(총 2,300여점)의 대부분은 12세기 후반∼14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청자편이 대부분(94%)이고, 기와류는 평기와가 가장 많고, 막새, 취두, 잡상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중 막새류는 연화문, 범자문, 귀목문이 대부분이고 ‘박씨(朴氏)·유씨(劉氏)’명(銘) 막새도 있고, 취두편은 모두 21개가 조사되었다.
This temple site built by Choe I (otherwise Choe U) in 1245 after Goryeo moved its seat of government to Ganghwa-do during the Mongolian invasion. It is roughly divided by staircases into four sections. The central area, which seems to have included the building, is 250m long north-south and 170m long east-west. Relics such as bricks showing bosanghwa (the ideal flower of Buddhism) patterns, chimi (the dragon-head-shaped tiles that were made to hang at roof tops), figures of monkeys, and fragments of tiles have been excavated.
The temple was built by Choe U during Goryeo's resistance against the Mongols. It was founded with the purpose of saving Goryeo with the help of Buddha. It is the largest temple built during the period of the Ganghwa-do retreat. It is also the place where the Tripitaka Koreana, an international cultural heritage, was impressed on wood blocks and preserved.
江华仙源寺址是1976年东国大学江华岛学术调查团对江华岛一带进行地表调查的过程中首次发现。发现当时就确认有几个柱础石、宝相花纹砖、刻有梵字的瓦片、搁放在屋顶上的杂像,又因仙源寺址位于仙源面都监村、都监山,因此具有学术·历史价值,根据这一带的渊源1977年将其指定为史迹第259号江华仙源寺址。出土遗物主要有瓷器类、瓦类、小型青铜诞生佛、鎏金铜制罗汉像、碳化的写经片等,瓷器类(共2,300多件)大部分为12世纪后期∼14世纪制造的青瓷片(94%),瓦类大多为平瓦,还出土了瓦当、鹫头、杂像等,其中瓦当类大多为莲花纹、梵字纹、鬼目纹以及“朴氏·刘氏”铭瓦当等,还有21件鹫头。
江華仙源寺址は1976年東国大学の江華島学術調査団による江華島一円の地表調査で初めて発見された。発見当時、ここで数個の礎石を含め、宝相華紋様の塼石・梵字が刻まれた瓦・屋根に載せた雑像を確認した。仙源面都監村と都監山にある寺の跡であることと、学術的・歴史的に価値があるため、地域の名称から因んで1977年に史跡第259号江華仙源寺址に指定された。出土された遺物は主に磁器流・瓦類・小型青銅誕生仏・金銅羅漢像・炭化した写経の破片などであり、磁器類(計2,300点余り)のほとんどは12世紀後半~14世紀に製作されたと思われる青磁の破片(94%)である。瓦類は平瓦が最も多く、軒丸瓦・鬼瓦・雑像などが出土されたが、これらのうち軒丸瓦の類は蓮華文・梵字文・鬼目文がほとんどで、朴氏・劉氏の苗字が書かれた軒丸瓦もあり、鬼瓦の破片は21個が発掘され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