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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경주 지마왕릉 (慶州 祗摩王陵)Tomb of King Jima, Gyeongju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
수량/면적 | 900㎡ |
지정(등록)일 | 1971.04.28 |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배동 30번지 |
시 대 | 신라 지마왕 |
소유자(소유단체) | 국가 |
관리자(관리단체) | 경주시 |
사적
경주 지마왕릉 (慶州 祗摩王陵)Tomb of King Jima, Gyeongju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고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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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900㎡ |
지정(등록)일 | 1971.04.28 |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배동 30번지 |
시 대 | 신라 지마왕 |
소유자(소유단체) | 국가 |
관리자(관리단체) | 경주시 |
경주 지마왕릉 慶州 祗摩王陵 사적 제221호 이 능은 신라 제6대 지마왕(112~134 재위)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파사왕(婆娑王)의 맏아들로 왕위를 이었다. 지마왕의 재위 기간에 신라는 백제와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가야와는 낙동강 하류를 둘러싸고 패권을 다투었다. 왜인(倭人)들이 동쪽 변경(邊境)을 침범하였으나 교섭하여 강화를 맺었고, 북쪽에서 말갈(靺鞨)이 쳐들어오자 백제의 도움을 받아 물리쳤다. 무덤은 포석정에서 남쪽으로 200m쯤 떨어진 남산의 서쪽 자락에 있다. 왕릉 중에는 작은 편에 속한다. 발굴조사는 하지 않았으나 외형과 입지로 보아 내부 구조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일 가능성이 있다.
신라 지마왕(112∼134)의 무덤으로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
성은 박씨로서 파사왕의 아들이다. 무덤의 모양은 비교적 규모가 큰 둥근무덤으로 남산에 뻗은 경사면의 높은 곳에 만들었으며 별다른 특징은 없다. 무덤의 위치와 규모 및 형태로 보아 신라 초기에 만든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무덤 앞에 최근에 설치한 작은 석상이 놓여있다.
※(지마왕릉 → 경주 지마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This is the tomb of King Jima (A.D. 112~134) of the Silla Dynasty, who saved his country from the attacks of foreign nations such as Gaya, Japan, and the Malgal. He was the son of King Pasa of Park Clan. His tomb is relatively large, and circular in shape. It is located on Namsan Mountain at an especially high spot, but it has no particularly original features of its own. Its location, size and shape suggest that it was not constructed early in the Silla period. A small stone structure resembling a stone tablet was recently placed in front of the tomb.
是新罗祗摩王(112∼134)的陵墓。祗摩王在位23年,击退了伽倻、倭寇、靺鞨的入侵。祗摩王姓朴,是婆娑王之子,陵墓为规模较大的圆形墓,位于延伸至南山的斜坡高地,没有明显的特征。从陵墓的位置、规模及形态来看,应该不是新罗初期所建。墓前有近期设置的小石像。
新羅祇摩王(112~134)の墓で、23年間在位しながら伽倻・倭寇・靺鞨の侵略を防いだ。祇摩王の苗字は朴氏で、婆娑王の息子である。形はわりと大きな規模をした丸い墓で、南山に伸びた傾斜面の高い所に築かれ、これといった特徴はない。墓の位置と規模及び形から見て、新羅初期に築かれたものには見られない。墓の前に最近設けられた小さな石像が置かれている。
경주 지마왕릉 慶州 祗摩王陵 사적 제221호 이 능은 신라 제6대 지마왕(112~134 재위)이 묻힌 곳으로 알려져 있다. 파사왕(婆娑王)의 맏아들로 왕위를 이었다. 지마왕의 재위 기간에 신라는 백제와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가야와는 낙동강 하류를 둘러싸고 패권을 다투었다. 왜인(倭人)들이 동쪽 변경(邊境)을 침범하였으나 교섭하여 강화를 맺었고, 북쪽에서 말갈(靺鞨)이 쳐들어오자 백제의 도움을 받아 물리쳤다. 무덤은 포석정에서 남쪽으로 200m쯤 떨어진 남산의 서쪽 자락에 있다. 왕릉 중에는 작은 편에 속한다. 발굴조사는 하지 않았으나 외형과 입지로 보아 내부 구조는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일 가능성이 있다.
신라 지마왕(112∼134)의 무덤으로 23년간 재위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았다.
성은 박씨로서 파사왕의 아들이다. 무덤의 모양은 비교적 규모가 큰 둥근무덤으로 남산에 뻗은 경사면의 높은 곳에 만들었으며 별다른 특징은 없다. 무덤의 위치와 규모 및 형태로 보아 신라 초기에 만든 것으로 볼 수는 없다. 무덤 앞에 최근에 설치한 작은 석상이 놓여있다.
※(지마왕릉 → 경주 지마왕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This is the tomb of King Jima (A.D. 112~134) of the Silla Dynasty, who saved his country from the attacks of foreign nations such as Gaya, Japan, and the Malgal. He was the son of King Pasa of Park Clan. His tomb is relatively large, and circular in shape. It is located on Namsan Mountain at an especially high spot, but it has no particularly original features of its own. Its location, size and shape suggest that it was not constructed early in the Silla period. A small stone structure resembling a stone tablet was recently placed in front of the tomb.
是新罗祗摩王(112∼134)的陵墓。祗摩王在位23年,击退了伽倻、倭寇、靺鞨的入侵。祗摩王姓朴,是婆娑王之子,陵墓为规模较大的圆形墓,位于延伸至南山的斜坡高地,没有明显的特征。从陵墓的位置、规模及形态来看,应该不是新罗初期所建。墓前有近期设置的小石像。
新羅祇摩王(112~134)の墓で、23年間在位しながら伽倻・倭寇・靺鞨の侵略を防いだ。祇摩王の苗字は朴氏で、婆娑王の息子である。形はわりと大きな規模をした丸い墓で、南山に伸びた傾斜面の高い所に築かれ、これといった特徴はない。墓の位置と規模及び形から見て、新羅初期に築かれたものには見られない。墓の前に最近設けられた小さな石像が置か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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