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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창경궁 (昌慶宮)

Changgyeonggung Palace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수량/면적 216,774㎡
지정(등록)일 1963.01.18
소 재 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창경궁)
시 대 조선 세종 즉위년(1418)
소유자(소유단체) 국(문화재청) 
관리자(관리단체)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 
문화재 담당부서 : 창경궁관리소- 상세문의
문화재 설명

창경궁은 1418년 조선 3대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생활하던 수강궁(壽康宮)이 있었던 자리에 지어진 조선시대 궁궐이다.

조선 9대 성종은 1483년(1484년 완공) 당시 세 명의 대비(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추존 덕종의 왕비 소혜왕후(인수대비), 예종의 왕비 안순왕후)를 위해 수강궁을 크게 확장하여 1484년에 완공되어 그 이름을 창경궁이라 하였다. 처음 지을 당시에는 명정전·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 등의 침전, 양화당·여휘당·사성각 등의 전각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궁궐 중에서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으며, 창덕궁과 함께 동궐東闕로 불렸다. 창건 당시에는 그다지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 궁궐이 모두 소실된 이후, 광해군 대에 창덕궁과 함께 다시 지어져 고종 대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이 중건되기까지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창경궁은 경종, 정조, 순조, 헌종이 태어난 곳이자 소현세자, 추존 장조(사도세자) 혜경궁(헌경황후) 홍씨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그러나 왕조의 상징이었던 창경궁은 1907년부터 일제에 의해 훼손되어 전각 대부분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일반에 공개하였으며, 1911년에는 궁의 이름마저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시켰다. 광복 후 1983년 본격적인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궁의 이름을 다시 창경궁으로 되찾게 되었고 경내에 있던 동물원은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긴 후 옛 모습으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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