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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경주읍성 (慶州邑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수량/면적 45,496㎡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북부동 1번지
시 대 고려 우왕 4년 개축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경주시 
문화재 담당부서 : 고도보존육성과- 상세문의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경주는 통일신라시대 이후 지방통치의 중심지였다. 주로 중심이 되는 지방도시에 읍성을 쌓았으므로 경주에도 읍성을 쌓았다.

다만, 경주읍성의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오고 있다. 즉 고려 우왕 때 개축했다는 기록과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에 왜군에게 이 성을 빼앗겼을 때 당시 이장손이 만든 일종의 포인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다시 찾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시대 세종, 선조, 영조, 고종에 이르기까지 경주 읍성에 많은 증․개축 과정과 내․외부의 구조 변경이 있었음을 문헌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문종실록(文宗實錄)』에 따르면 문종 원년(1451년)에 둘레 4,075척(약 1,904m), 높이 11척 6촌(약 5.4m) 등 비교적 정확한 성곽(城廓) 제원과 구체적인 구조가 잘 기록되어 있다.

읍성의 성문은 동서남북에 향일문, 망미문, 징례문, 공진문의 4대문이 있어 이들 문을 통해 출입하였다. 특히 남문인 징례문에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에 걸려있는 신라 성덕대왕 신종이 매달려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읍성은 경주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와 이후 대부분 헐려나가고 동벽만 약 50m 정도만 옛 모습을 남기고 있었다. 현재 경주읍성의 옛 모습을 찾기 위하여 2009년 “경주읍성 정비복원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2018년 동성벽(324m), 동문(향일문) 복원 및 주변 탐방로 정비를 완료하고, 앞으로 주변의 노후 불량주택을 매입 정비와 북쪽 성벽 등의 복원정비를 추진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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