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정약용 필적 하피첩 (丁若鏞 筆蹟 霞帔帖)Calligraphy by Jeong Yak-yong
분 류 | 기록유산 / 서간류 / 서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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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 | 3첩 |
지정(등록)일 | 2010.10.25 |
소 재 지 |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로 30 (탄현면, 국립민속박물관 개방형수장고) |
시 대 | 1810년(순조 10, 정약용 49세) |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 |
관리자(관리단체) | 국립민속박물관 파주관 |
문화재 설명
『정약용 필적 하피첩(丁若鏞 筆蹟 霞帔帖)』은 서문에 적혀있듯이 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고 얼마 후 아내 홍씨부인이 바래고 해진 치맛감 여러 폭을 부쳐온 것을 잘라서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구절을 직접 짓고 써준 것이다. 제작연대는 경오년 즉 1810년(순조 10) 7월과 9월로 그의 나이 49세 때였다.
이 서첩의 수량은 원래 네 첩이었으나 현재 세 첩만 알려져 있다. 현재의 《하피첩》3첩은 그 하나가 결락된 셈인데, 각첩 표지에 ‘하피첩’이란 제목은 좀 남아 있으나 그 아래의 ‘첩 순서’[帖次]는 탈락되어 몇 번째 첩이 없는지를 알 수 있다. 《하피첩》3첩은 그 중 두 첩에 각각 1810년 7월[首秋]과 1810년 9월[菊秋]의 서문이 있어 강진 유배시절인 1810년 기년작이란 점에 의미가 있다. 또 원래의 네 첩 모두가 전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세 첩 중에는 "두 아들에게 경계하는 구절을 지어 써주다[作戒語以遺二子”ㆍ“寫戒子句]"라는 서문이 있어 정약용이 직접 짓고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강진 유배 이후 정약용의 전형적인 행초서풍을 보여주며, 특히 세번째 첩에 실린 전서(篆書)와 예서(隸書)는 다른 서첩에서 좀처럼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