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문화재 검색

  • 인쇄

보물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지눌진영 (大邱 桐華寺 普照國師知訥眞影)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불교회화
수량/면적 1폭
지정(등록)일 2010.02.24
소 재 지 대구 동구 팔공산로201길 41, 동화사 (도학동)
시 대 1폭
소유자(소유단체) 동화사 
관리자(관리단체) 동화사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안내판 설명
개별안내판

대구 동화사 보조국사지눌진영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지눌(1158-1210)의 생애 지눌은 황해도 서흥에서 출생하여, 17세에 출가하였다. 25세에 승과에 합격하였으나, 당시 일반적인 개경 불교교단 내의 출세를 떠나 창평과 예천 등 지방으로 내려가 수행에 정진하였다. 그러다가 31세에 팔공산 거조사로 옮겨 정혜사 定慧社 결사를 조직하였고, 동화사를 중창하였다. 지눌은 10년의 세월동안 정혜결사운동을 심화했고, 이윽고 밀려오는 많은 수행자들을 수용할 곳이 좁아 승주 조계산으로 옮겨 수선사 修禪社 결사를 이어갔다. 53세가 되는 1210년 지눌은 사람들에게, “내가 세상에 머물며 법을 말하는 것이 오래지 않을 것이니 각자 마땅히 노력하라”고 부촉한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지눌의 결사운동 고려 전기에 불교가 융성하면서 그 폐해 또한 노출되었다. 불교사원들은 계속해서 부유해졌으며 그만큼 타락상도 더해갔다. 또 불교세력 자체 내 교종과 선종의 대립도 심각하였다. 12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려 불교는 양적 확대보다는 조용한 자성과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으며, 새로운 시대정신의 출현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 때 지눌이 등장하여 새로운 신앙운동으로 정혜결사를 조직한 것이다. 대립된 불교계를 개혁하기 위해 교선을 아우르고 정토신앙까지 포괄하는 것이었다. 정혜결사는 한국 불교계에 영원히 기억될 역사적 사건으로, 무력한 고려 불교계에 던져진 하나의 폭탄선언이었으며, 영적 불모지에 돋아난 새생명의 싹이기도 했다. 지눌과 한국불교 전통 지눌의 조계종은 새롭게 등장한 무인정권으로부터 지지와 후원을 받아 고려 후기에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원의 간섭기가 되면서 지눌의 새로운 불교결사 정신은 근본적인 제약을 받게 되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불교의 사회적 이념으로서의 기능은 상실되었다. 이후 서산 휴정 西山 休靜이 나와 지눌의 선사상을 충실이 계승하면서, 7세기 이후 교로 시작하여 선으로 들어가는 이른바 사교입선 捨敎入禪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정토신앙에 있어서도 아미타불 염불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사상은 비슷하다. 서산의 불교전통은 조선 후기와 오늘날까지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결국 고려 중기에 지눌에 의해 전개된 새로운 선불교 운동은 이미 오늘날 한국불교의 방향을 예고한 것이었다.

문화재 설명

고려시대의 고승 보조국사 지눌의 진영으로, 흰색의 장삼과 가사를 입고 등 높은 의자에 앉아 석장을 쥐고 오른쪽으로 몸을 튼 자세로 앉아 있는 국사의 모습을 그렸다.

송광사 국사전 보조국사 진영(1780년)과 동일한 초본을 바탕으로 제작되었지만, 섬세한 필치의 인물묘사와 담채색에 가까운 옷의 채색기법 등에서 그보다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또한 동화사 사명당대사진영과 세부표현 및 필선 등 화풍이 매우 유사하여 동일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되므로 보조국사진영 가운데 시기가 가장 올라가며 특히 화질의 면에서 뛰어난 것으로 판단되었다. 현존하는 보조국사 지눌의 진영 가운데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This portrait of State Preceptor Jinul, a much-venerated monk of Goryeo, represents him dressed in a white robe and outer vestment, seated on a high chair with his body turned toward the right and a staff in one hand. This portrait, painted based on the same existing portrait as his portrait housed in Guksajeon Hall of Songgwangsa Temple (1780), appears to pre-date the latter, judging from the detailed way the old monk is depicted in fine brushwork, and the very light colors used for his clothes. Meanwhile, this portrait is in many respects strikingly similar to the Portrait of Buddhist Monk Yujeong in Donghwasa Temple, Daegu (Treasure No. 1505), including the style of depiction of small details and brushwork, suggesting that it may have been painted at around the same period of time as the latter. If this is true, this portrait of Donghwasa Temple, excellent in the quality of painting, is the oldest extant portrait of State Preceptor Jinul.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