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문화재 검색

  • 인쇄

보물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安城 七長寺 慧炤國師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8.12.19
소 재 지 경기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 칠장사 경내 (칠장리) / (지번)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2 칠장사 경내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칠장사 
관리자(관리단체) 칠장사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안내판 설명
개별안내판

칠장사 혜소국사비 七長寺 慧沼國師碑 보물 제488호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光宗) 23년(972)에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에 출가 하였으며, 17세에 융천사(融天寺)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국사는 말년을 칠장사(七長寺)에서 보내며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83세가 되던 고려 문종 8년(1054)에 입적하였다. 고려 문종(文宗) 14년(1060) 혜소국사의 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이 비는 김현(金顯)이 글을 짓고 민상제(閔賞濟)가 글씨를 썼는데,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신(碑身)의 높이는 241cm, 폭은 128cm이며,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문화재 설명

혜소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혜소국사는 고려 광종 23년(972)에 안성에서 출생하여, 10세에 출가하였으며 17세에 융천사(融天寺)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국사는 말년을 칠장사에서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한다.

현재 비는 비받침인 귀부(龜趺)와 비몸돌·머릿돌이 각각 따로 놓여 있는 상태이다. 흑대리석으로 만든 비몸돌의 양쪽 옆면에는 상하로 길게 두 마리의 용을 새겨 놓았는데 그 솜씨가 뛰어나다.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씨에서는 고려인다운 뛰어난 풍모가 느껴진다.

문종 14년(1060)에 세워진 이 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의 장수인 가토가 이 절에 왔을 때, 어떤 노승이 홀연히 나타나 그의 잘못을 꾸짖자 화가 난 가토가 칼을 빼어 베었다. 노승은 사라지고 비석이 갈라지면서 피를 흘리니 가토는 겁이 나서 도망을 쳤다 한다. 현재 이 비의 몸돌이 가운데가 갈라져 있어 이러한 이야기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This stele was erected at Chiljangsa Temple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State Preceptor Hyeso. He was born in 972, the 23rd year of the reign of the King Gwangjong of the Goryeo Dynasty, in Anseong. He became a Buddhist monk when he was 10 years old, and at the age of 17, he received teaching at Yungcheonsa Temple. He became widely revered while he was spending his last years at Chiljangsa. At present, the tortoise-shaped pedestal, the main body, and the ornamental top of the stele are placed separately. The two sides of the main body, which is made of black marble, are carved with long, vertical designs of two dragons showing excellent workmanship. The inscription on the stele records the life, achievements and virtue of Hyeso, and it exhibits characteristics of Goryeo calligraphy. The stele, constructed in 1060, the 14th year of the reign of King Munjong, has a legend. When Gato, a Japanese general, came to this Chiljangsa Templ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 old monk suddenly appeared and rebuked him for his faults, so Gato got mad and put the monk to the sword. However, the monk had already disappeared, and instead, the stele was cracked and bleeding. At this extraordinary scene, the general got scared and fled from the area. This legend is lent credence by the fact that the main body of the stele is divided in half.

此石碑用来纪念慧炤国师的功绩。高丽光宗23年(972)慧炤国师出生于安城,10岁出家,17岁在融天寺修学。慧炤国师在七长寺度过晚年,受众人景仰。此碑建于文宗14年(1060),传说壬辰倭乱当时倭寇的将帅加藤至此时寺内出现了一名老僧指责他的过错,加藤一怒之下拔刀砍向老僧。但此时老僧突然消失,只有碑身裂开并从碑中流出鲜血,加藤十分害怕,慌忙逃走。如今碑身中间仍有裂痕,似乎在证实着这个传说。

慧炤国師の業績を称えるために立てられた碑である。慧炤国師は高麗光宗23年(972)に安城で出生し、10歳で嫁入りして、17歳の時は融天寺で教えを受けた。国師は末年を七長寺で過ごしたが、多くの人々の尊敬を受けたと言う。文宗14年(1060)に造られたこの碑には、次のような説話が伝わっている。壬辰倭乱の時に倭国の大将である加藤がこの寺へ来たとき、或る老僧が突然現われて彼の過ちを叱ると、それに怒った加藤が刀を抜いて彼を切ってしまった。老僧は消えて碑石が割れながら中から血が流れたため、加藤は怖くなって逃げ出したという。現在この碑の碑身石の真ん中が割れており、この説話を裏付けている。

조사연구자료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