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문화재 검색

  • 인쇄

보물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앞 쌍사자 석등 (楊州 檜巖寺址 無學大師塔 앞 雙獅子 石燈)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석등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3.09.02
소 재 지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8-1번지 회암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회암사 
관리자(관리단체) 회암사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안내판 설명
개별안내판

쌍사자석등은 1407년(태종7) 보물 제388호 무학대사탑과 함께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석등으로 무학대사탑 앞에 세워져 있다. 석등은 어둠을 밝혀 준다는 조명의 역할 이외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여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의미를 지닌 불가(佛家)의 중요한 상징물이다. 쌍사자석등은 우리나라 고유의 석등 형식인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간주석(間柱石)이 2마리의 사자로 대처된 이형(異形)에 속한다. 또한 목조 건축의 지붕 에서 유래된 옥개석의 형태, 화사석(火舍口)의 창(窓)을 두 방향으로만 내고 있는 점, 그리고 사자를 비롯하여 연꽃무늬 등의 표현방식에서 조선 전기의 양식적인 특징이 확인된다. 높이는 2.6m이며, 평면의 전체적인 기본 형태는 네모꼴을 띤다. 지대석(址臺石)과 하대석(下臺石)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하대석에는 모두 8판의 연꽃이 겹을 이루면서 넓적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 위의 간주석은 2마리의 사자로 조각되었는데, 이러한 형식은 통일 신라 이래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상대석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는데 하대석과 같은 형태의 연꽃무늬로 장식되었으며, 1단의 각형 굄이 각출各出되어 있다. 화사석火舍石은 2매의 돌로 되어 있는데, 두 방향으로만 화창 (火窓)을 내었다. 옥개석은 보주까지 모두 하나의 돌로 조성되었는데, 전체적으로 목조 건축물과 같은 형태로 제작하여 옥개 받침을 대신해 목조 가구에서 보이는 부재들이 표현되었다.

문화재 설명

회암사는 고려 충숙왕 때인 1328년에 승려 지공(指空)이 창건한 사찰로, 그 제자인 나옹(懶翁)이 불사를 일으켜 큰 규모의 사찰이 되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각별히 관심을 가졌으며, 왕위를 물린 후에도 이 곳에서 머무르며 수도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절터의 동쪽 능선 위에 지공과 나옹 그리고 무학의 사리탑이 남과 북으로 나란히 서있고, 그 남쪽 끝에 이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바닥돌과 아래받침돌은 하나로 붙여서 만들었으며, 그 위의 중간받침돌은 쌍사자를 두어 신라이래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쌍사자는 가슴과 배가 서로 붙어 입체감이 없고 엉덩이가 밑에 닿아 부자연스럽다. 윗받침돌에는 8개의 연꽃모양을 새겼다. 불을 밝혀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은 2개의 석재를 좌 우에 놓아 그 간격으로 생긴 2개의 공간이 창의 구실을 하고 있다. 지붕돌은 두꺼우며 처마밑이 반원모양으로 들려 있고, 경사면은 네 귀퉁이가 두툼하게 도드라져 뚜렷이 표현되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둥근 돌 위로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있다.

기본형이 4각인 형태로 삼국시대이래 고유의 8각 석등형태에서 벗어났다는 점이 주목되며,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과 양식이 비슷한데, 만들어진 시기도 이와 같은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의 작품으로 추측하고 있다.

Hoeamsa Temple was constructed by Buddhist monk Jigong in 1328 during the reign of King Chungsuk of the Goryeo Dynasty, and expanded by his disciple, Naong. Yi Seong-gye, the first king of Joseon, supported the temple and underwent monastic discipline himself there after his abdication from the throne. At the east ridgeline of the temple site, the stupas of Jigong, Naong and Muhak stand side by side from north to south, and this stone lantern is located the most southerly among them. The base stone and the lower stylobate are made of one stone. The middle stylobate with carvings of twin lions follows the style popular since the Silla era. The lions are roughly carved so that their bodies are stuck together from the chest to the abdomen. On the upper stylobate are engraved eight lotus flowers. The light chamber of the stone lantern is also roughly made, simply by placing two stone plates in the left and right side each to make two space which function as windows. The thick roof stone has the eaves turned up in the shape of a half-circle at angled positions. The top of the roof is decorated with a lotus bud shaped ornament placed on a round stone. It is remarkable that the basic square form of this lantern departs from the typical octagonal form that had been the rule since the Three Kingdoms period. This lantern is believed to have been made in the early years of the Joseon Dynasty, judging from its similarity to the Lion Stone Lantern in Front of the Stupa of State Preceptor Bogak at Cheongryongsa Temple Site, Chungju (Treasure No. 656).

桧严寺由僧侣指空创建于1328年,其弟子懒翁在此开创佛事,寺院也随之日益壮大。朝鲜太祖李成桂对佛教格外关注,退位后曾在此居住修道,寺院也因此著称。寺址东边山脊上沿南北方向并排坐落着指空、懒翁和无学的舍利塔,这座石灯位于最南边。基本形状为四角形,摒弃了三国时代以来固有的八角石灯形式,值得瞩目,与青龙寺址的普觉国师定慧圆融塔前狮子石灯(宝物第656号)样式相似,建造时期也相同,因此推测此石灯建于朝鲜前期。

檜巌寺は高麗忠粛王の時である1328年に僧侶指空が創建した寺院であり、その弟子である懶翁が仏事を起こし、大規模の寺院になった。朝鮮太祖李成桂が格別の関心を持ったことや、王位を譲った後もここで留まりながら、修道生活をしたことで有名である。寺跡の東側の稜線の上に指空と懶翁、そして無学の舎利塔が南や北に並んで建ち、その南の先にこの石灯籠が位置している。基本形が四角の形態であり、三国時代から続いた固有の八角石灯籠の形態から逸脱した点などが注目されており、青龍寺跡の普覚国師定慧円融塔碑前獅子石灯籠(宝物第656号)と様式が似ているが、造られた時期もこれと同じであることから、朝鮮前期の作品であると推測される。

조사연구자료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