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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驪州 高達寺址 元宗大師塔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9-3번지
시 대 고려 광종 26년( 975)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여주군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안내판 설명
개별안내판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는 고달사터(고달사지)에 세워져 있는 비로, 원종대사 찬유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신라 경문왕 9년(869)에 태어난 원종대사가 958년(고려 광종9) 90세로 입적하자 광종은 그의 시호를 ‘원종’이라 하고, 탑 이름을 ‘혜진’이라 하였다. 이 탑은 받침돌과 비 몸, 머릿돌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15년 비 몸이 넘어지면서 여덟 조각으로 깨지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 오다가 지금은 여주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고달사터(고달사지)에는 2014년에 복제한 비 몸이 설치되어 있다. 비문에는 원종대사의 가문․출생․행적 그리고 고승으로서의 학덕 및 교화와 입적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이 거북 받침돌과 머릿돌은 탑비에 기록된 비문에 의해 975년(광종 26)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거북 머리가 험상궂은 용머리에 가까우며 목이 짧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점, 비 머리의 표현이 격동적이며 소용돌이치는 구름무늬 장식이 복잡한 점 등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이어지는 탑비 형식을 잘 보여 준다.

개별안내판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驪州 高達寺址 元宗大師塔碑) 지정번호 : 보물 제6호 시 대:고려시대 소 재 지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417-3 이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는『헤목산고달선원국사원종대사지비(慧目山高達禪院國師元宗大師之碑)』를 받쳤던 귀부와 비신석(碑身石) 위에 얹혔던 이수이다. 비는 일찍이 무너져 신석 (身石)은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에 옮겨져, 현재는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 서쪽화랑(西迴廊)에 진열되어 있으며 이곳 고달선원(高達禪院) 절터에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비문(碑文)에 의하면 원종대사(元宗大師)는 신라(新羅) 경문왕(景文王) 9년(869) 13세에 출가하여 상주(尙州) 공산(公山) 삼랑사(三郎寺)에서 융제선사(融諫禪師)에게 사사(師事)하였다. 22세에 양주(楊州) 삼각산(三角山) 장의사(藏義寺)에서 구족계 (具足戒)를 받았고 23세에 입당(入唐)하여 서주(舒州) 동성현(桐城縣) 적주산(寂住山) 에서 자선화상(子禪和尙)에게 사사(師事)하였으며 경명왕(景明王) 5년(921)에 환국(還國)하여 봉림사(鳳林寺)에 거주(居住)하였다. 그후 광주(廣州) 천왕사(天王寺)에서 고려 (高麗) 광종(光宗) 9년(958) 8월에 90세로 입적 (入寂)하니 왕이 애도(哀悼)하여 원종대사(元宗大師) 혜진(慧眞)이라 추시(追諡)하고 '진영일정 (眞影一幀)'을 그리게 하였으며 대사(大師) 입적 후 17년에 이 비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귀부(龜跌)는 가대한 단일석 (單一石)으로 조성되고 6각 귀갑문(龜甲紋)이 장식되어 있으며 장방형 (長方形)의 비좌(碑座)는 운문(雲紋)이 새겨져 있는 연화좌(蓮華座) 위에 조출(彫出)되고 상면(上面) 둘레에는 복련문(覆蓮文) 조출되어 있다. 네 다리와 손톱 끝의 조형은 사실적이며 예리하나 귀두(龜頭)의 면모(面貌)는 흔히 볼 수 있는 용형 (龍形)이다. 이수(螭首)는 구름과 용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정상에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어 보주(寶珠)가 꽂혔던 흔적으로 보인다.

문화재 설명

고달사터에 세워져 있는 비로, 원종대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원종대사는 신라 경문왕 9년(869)에 태어나, 고려 광종 9년(958)에 90세로 입적하였다. 광종은 신하를 보내어 그의 시호를 ‘원종’이라 하고, 탑이름을 ‘혜진’이라 내리었다.

비는 일찍이 무너져 비신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있으며, 이곳 절터에는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비문에는 원종대사의 가문·출생·행적 그리고 고승으로서의 학덕 및 교화·입적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한다.

받침돌의 거북머리는 눈을 부릅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꼬리가 길게 치켜올라가 매우 험상궂은 모습이다. 다리는 마치 땅을 밀치고 나가려는 듯 격동적이고, 발톱의 사실적 표현은 땅을 꼭 누르고 있는 듯하다. 목은 길지 않아 머리가 등에 바짝 붙어 있는 듯 하다. 등에는 2중의 6각형 벌집 모양이 정연하게 조각되었으며, 중앙부로 가면서 한 단 높게 소용돌이치는 구름을 첨가하여, 비를 끼워두는 비좌(碑座)를 돌출시켜 놓았다.

머릿돌은 모습이 직사각형에 가깝고, 입체감을 강조한 구름과 용무늬에서는 생동감이 넘친다. 밑면에는 연꽃을 두르고 1단의 층급을 두었다.

이 거북받침돌과 머릿돌은 탑비에 기록된 비문에 의해 97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거북의 머리가 험상궂은 용의 머리에 가깝고, 목이 짧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점, 비머리의 표현이 격동적이며, 특히 소용돌이치는 구름무늬의 번잡한 장식 등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로 진전되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This stele was erected at the site of Godalsa Temple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the Buddhist monk Wonjong, who was born in 869 (the 9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yeongmun of the Silla Dynasty) and died at the age of 90 in 958 (the 9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wangjong of the Goryeo Dynasty). King Gwangjong bestowed the posthumous title of Wonjong upon him and named the monument ‘Hyejin’. The actual stele was destroyed a long time ago, and only the tortoise-shaped pedestal and the ornamental capstone in the form of a hornless dragon remain today. The stele’s broken main stone is displayed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Its inscription includes details about Wonjong's birth, life, achievements, learning and virtues as a monk. The tortoise pedestal is characterized by glaring eyes that seem to stare directly at the viewer, vividly expressed legs and paws, and a very short neck. The back of the tortoise pedestal is carved with double hexagonal honeycomb patterns, while its middle part, which is one tier higher than the pedestal and is the part to which the main body of the stele is fixed, is adorned with swirling cloud patterns. The ornamental capstone, which features a lively design of clouds and dragons, is almost rectangular; while its base is decorated with a lotus flower design. According to the inscription, the tortoise-shaped pedestal and the ornamental capstone were made in 975. Judging from certain details such as the tortoise's face’s resemblance to a grim dragon, its short neck, glaring eyes, and ornamental stone, and especially the vivid and complex decoration with swirling cloud design, this stele dates from the period of transition from the artistic style of the late Unified Silla Dynasty to that of the early Goryeo Dynasty.

是为了纪念元宗大师而在高达寺址修建的一尊碑。元宗大师出生于新罗景文王9年(869),高丽光宗9年(958)圆寂,享年90岁。高宗派遣大臣赐予他“元宗”的谥号,塔也赐以“慧真”之名。通过塔碑上的碑文记录可知,石龟碑座和首石修建于975年。龟头近乎于表情凶猛的龙头,颈短、直视前方,碑首则体现了激剧动荡的风格,尤其繁杂的漩涡状卷是云纹装饰充分体现了统一新罗后期至高丽前期的塔碑形式。

高達寺址に建てられている碑で、元宗大師を称えるためのものである。元宗大師は新羅景文王9年(869)に生まれ、高麗光宗9年(958)に90歳で入寂した。光宗は臣下を送り、彼の諡号を「元宗」とし、塔の名を「慧真」とした。この亀型の台石と定礎は塔碑に記録された碑文により、975年に造られたことが分かる。亀の頭が険しい龍の頭に似ており、首が短く前をまっすぐ見渡している点、碑頭の表現が激動的で、特に渦巻く雲の文様の煩雑な装飾等は、統一新羅後期から高麗前期へ進展する塔碑形式をよく表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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