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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등재유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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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문화재자료

화산신도비 (花山神道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85.08.05
소 재 지 경북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 산41번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권***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경상북도 안동시 문화유산과 054-840-5225~6

신도비란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묘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화산 권주(1457∼1505) 선생을 기리고 있다.

화산은 세조 3년(1457)에 태어나, 24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성종 20년(1489)에는 공조정랑으로 있으면서 질정관이 되어 요동지역을 다녀오기도 하였으며, 성종 24년(1493) 12월에서 이듬해 8월까지는 경차관이 되어 대마도를 다녀오기도 하였다. 연산군 3년(1497)에는 도승지에까지 이르렀으며, 1499년에는『성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예전에 그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에게 사약을 받들고 갔다는 이유로 파직되었고, 이 후에도 이 일로 죄를 추궁당하여 연산군 11년(1505) 사약을 받고 생을 마쳤다. 중국어에도 능하여 명나라와의 외교활동에서도 중요한 일을 맡아하였고, 성품도 검소하고 단아하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였던 이라고 한다.

비는 낮고 넓적한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으로, 숙종 37년(1711)에 세웠다. 비문은 이조판서를 지냈던 이현일이 글을 짓고, 이유의 글씨로 하여 새겨놓았다. 1981년 새로이 비각을 지어 비를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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