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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문화재자료

청계사 (淸溪寺)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수량/면적 19168
지정(등록)일 1983.09.19
소 재 지 경기도 의왕시 청계로 475 (청계동, 청계사)
소유자(소유단체) 청계사 
관리자(관리단체) 청계사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경기도 의왕시 문화체육과 031-345-2534

청계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하였으며 고려 충렬왕 10년(1284)에 평양부원군 조인규가 자신의 원당(願堂)으로 크게 다시 짓고 청계사 내에 자신을 위한 건물을 만들어 머물기도 하였다.



조선 세조 13년(1431)과 세조 30년(1448)에 조인규의 6세손인 조현(趙玹)이 다시 짓는 등 오랫동안 청계사는 조인규 집안의 원찰(願刹)이 되었다. 연산군 9년(1503) 도성 내 사찰 폐쇄령이 떨어지게 되자 청계사는 봉은사를 대신해 선종본찰(禪宗本刹)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임진왜란과 화재의 피해를 받았다. 조선 숙종 15년(1689) 승려 성희(性熙)가 다시 사찰을 크게 짓고, 그 내력을 추려 청계사사적기비를 세웠다. 영조 37년(1761) 왕세손 정조가 직접 청계사를 찾아 왕실을 위한 기도처를 마련하고, 밤나무 3,000주(柱)를 내리고 관리하게 하였다. 정조 13년(1789)에는 현륭원제각(顯隆園祭閣)을 세웠다. 이후 정조 22년(1798)에 조인규 후손인 조무의(趙武毅)의 시주로 불사가 이루어졌다. 그 뒤에도 조선후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행해진 불사를 통해 청계사는 안정적으로 가람(伽藍)의 형태를 이어올 수 있었다. 특히 19세기에는 한국 선불교의 중흥을 일으켰던 경허(鏡虛, 1849~1912)가 이곳에서 출가하여 도를 깨우쳤고, 그 선맥을 이은 만공(滿空, 1871~1946), 금오(金烏, 1896~1968), 월산(月山, 1912~1997) 등이 이곳에서 공부하였다.



사찰 건물은 조선후기의 건물로 추정되는 극락보전과 종각 및 삼성각, 지장전, 수각 등 3동의 요사를 비롯해 10채의 건물이 있으며 감로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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