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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화성 융릉과 건릉 (華城 隆陵과 健陵)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수량/면적 842,662㎡
지정(등록)일 1970.05.26
소 재 지 경기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안녕동)
시 대 조선 정조 13년(1789)
소유자(소유단체) 문화재청 
관리자(관리단체)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서부지구관리소 

융릉은 사도세자(장조의황제)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헌경의황후)의 무덤이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라 하였고, 1899년에 장조의황제로 추존하였다. 이때 혜경궁 홍씨도 헌경의황후로 추존하였다.

융릉은 원래 양주의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수원의 화산으로 옮겨 현륭원이라 하였다. 합장릉인 융릉은 병풍석을 세우고 모란과 연꽃무늬를 새겼다. 석등은 전기의 8각형과 숙종, 영조대에 등장한 4각형 석등의 양식을 합한 새로운 양식이다. 문석인은 머리에 금관을 쓴 예가 나타나고 있어 19세기 이후의 무덤 양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조는 현륭원을 마련할 때 온갖 정성을 기울여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와 그의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정조는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많은 인재를 등용하고, 조선 후기의 황금문화를 이룩하였다.

건릉은 현륭원의 동쪽 언덕에 있었으나 효의왕후가 죽자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서쪽으로 옮기기로 하고 효의왕후와 합장하였다. 무덤은 한 언덕에 2개의 방을 갖추었으며 난간만 두르고 있고, 그 외의 모든 것은 융릉의 예를 따랐다. 혼이 앉는 자리인 혼유석이 하나만 있으며, 융릉과 같이 8각형과 4각형을 조화시켜 석등을 세웠다.




※(융릉·건릉 → 화성 융릉과 건릉)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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