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우리지역 문화재

  • 인쇄

보물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長興 寶林寺 普照禪師塔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전남 장흥군 유치면 봉덕리 산10-1번지 보림사
시 대 통일신라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보림사 
관리자(관리단체) 보림사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안내판 설명
개별안내판

비(비)는 어떤 일의 자취를 후세에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놓은 것이다. 이 비는 보조선사 비로 통일신라 한강왕 10년(884)에 만들어진 것이다. 비문은 선의 경지와 보조국사의 행적, 창건 연기설화 등을 적고 있다. 김영(김영)이 글을 지었고 글씨는 7행의 선(선)자까지는 김원이 해서체로, 그 이하는 김언경(김수종)이 행서체로 썼다. 보조선사 체징(體澄, 804~880)은 헌강왕 6년(880)에 77세로 입적하였다. 그 후 헌강왕 9년(883)에 왕이 시호를 보조(보조), 탑의 이름을 창성(창성)이라 내렸다. 이 탑비의 모습을 보면 거북받침대좌는 용의 머리처럼 표현하였고, 목은 꼿꼿하게 세웠으며, 등에는 6각의 거북등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비의 받침 주위로 구름무늬와 당초무늬를 세겼다. 지붕덮개돌에도 연꽃잎무늬와 구름무늬를 가는 선으로 새겼는데, 형식적이다. 그러나 각 부분이 완전히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 또한 커 당시 석비(석비)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비의 총 높이는 3.46m이다.

문화재 설명

보림사에 있는 보조선사 지선의 탑비로,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보조선사(804∼880)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로, 어려서 출가하여 불경을 공부하였으며, 흥덕왕 2년(827)에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았다. 희강왕 2년(837) 중국으로 건너갔으나, 멀리서 구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문성왕 2년(840)에 귀국하여 많은 승려들에게 선(禪)을 가르쳤다. 헌안왕 3년(859) 왕의 청으로 보림사의 주지가 되었으며, 77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왕은 그의 시호를 ‘보조선사’라 하고, 탑이름을 ‘창성’이라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의 머리가 용머리를 하고 있어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나운 모습이며, 등 뒤에는 육각형의 무늬가 전체를 덮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구름과 연꽃을 새겨 장식해 놓았다. 비몸돌에는 보조선사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김영이 비문을 짓고 김원과 김언경이 글씨를 썼다. 머릿돌에는 구름과 용의 모습을 웅대하게 조각하였고, 앞면 중앙에 ‘가지산보조선사비영’이라는 비의 명칭을 새겼다.

통일신라 헌강왕 10년(884)에 세워진 비로, 당시 조형수준을 대표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This stele was erected at Borimsa Temple in 884 (the 10th year of the reign of King Heonggang of the Unified Silla Period)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Master Bojo. The stele has a usual form in that the main stone, on which the capstone is placed, is erected on a turtle-shaped pedestal. Master Bojo (804-880) became a Buddhist monk at a tender age and devoted himself to study of the Buddhist scriptures. In 827 (the second year of the reign of King Heungdeok of the Silla Dynasty) he received the religious precepts and devoted himself to their practice. In 837 (the 2nd year of King Huigang) he went to China and returned in 840 (the 2nd year of the reign of King Munseong) and preached Zen to many monks. He was appointed as the head monk of Borimsa Temple at the request of King Heonan in 859 (the 3rd year of the reign of King Heonan) and entered Nirvana at the age of 77 in 880. The king granted him the posthumous title of "Master Bojo" and named the stupa "Changseong". The turtle-shaped pedestal that supports the main stone has a dragon-like head with a ferocious look and clearly expressed facial features, and a back filled with hexagonal patterns. The base stone on which the main stone of the stele sits is engraved with cloud and lotus flower patterns at the center of the back. The stele bears an inscription about Master Bojo that was composed by Kim Yeong and written by Kim Won and Kim Eon-gyeong. The ornamental top of the stele is magnificently carved with cloud and dragon designs, while the title of the monument, "Master Bojo of Gajisan Mountain," is inscribed at the center. This masterful work displays all the artistry and characteristic style of steles built in the late 9th century.

位于宝林寺的普照禅师智诜的塔碑,龟蚨基台上面建有塔身和石首。普照大师(804-880)是统一新罗时代的僧侣,自幼出家并开始学习佛经,兴德王2年(827)接受了僧侣戒律。僖康王2年(837)远渡中国,领悟到求学其实无需远渡后,遂于文圣王2年(840)归国,开始向众多的弟子们传授禅道。宪安王3年(859)应国王之请任宝林寺主持,77岁圆寂。王赐予他“普照禅师”的谥号和“彰圣”之塔名。此碑建造于统一新罗宪康王(884)时期,是一部代表了当时造型水平的杰作。

宝林寺にある普照禅師彰聖の塔碑で、碑台の部分である亀趺の上に碑身があり、その上に碑蓋が乗せられている。普照禅師(804~880)は統一新羅時代の僧侶で、幼い頃に出家して経典を勉強し、興徳王2年(827)に僧侶が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戒律を授けた。僖康王2年(837)に中国へ渡ったが、遠くで勉強する必要がないことに気づき、文聖王2年(840)に帰国して数多くの僧侶に禅を教えた。憲安王3年(859)に憲安王によって宝林寺の住職になり、77歳で入寂した。憲安王は彼の諡号を「普照禅師」とし、塔の名を「彰聖」とした。統一新羅時代の憲康王10年(884)に建てられた碑で、当時の造形水準を代表するすばらしい作品である。

조사연구자료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