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우리지역 문화재

  • 인쇄

보물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光陽 中興山城 三層石塔)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전남 광양시 옥룡면 중흥로 263-100 (운평리) / (지번)전남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90-1
시 대 통일신라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광양시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안내판 설명
개별안내판

이중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신라 말기 삼층 석탑으로 조각과 장식이 화려하다. 몸체인 탑신석과 지붕돌인 옥개석이 각각 하나의 돌러 되어 있다. 각 층 탑신 네 귀에는 기둥이 굵직하게 표현되었고, 지붕돌 아래 옥개받침은 3단이며, 처마 밑은 수평으로 처리됐다. 1층 몸돌 각 면에는 연꽃 대좌 위에 앉은 여래상(如來像)을 조각하였다. 동서남북 어디에나 부처가 있음을 사방불(四方佛)을 통해 보여준다. 그 아래 기단은 한 면을 둘씩 나눈 다음 앞면에는 인왕상(仁王像), 뒷면에는 보살상(菩薩像), 양 측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2, 3층 몸돌은 급격히 작아지며 모서리 기둥만이 표현되었다. 탑신에 비해 밑의 기단부가 너무 커 보이는 경향이 있지만 매우 안정된 느낌을 주는 우수한 탑이다. 탑 꼭대기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원래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국보 제103호)과 함꼐 있었으나 석등은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화재 설명

중흥산성 서쪽 시냇가에 있는 3층 석탑이다. 중흥산성에는 신라 경문왕 때 도선대사가 창건한 중흥사(中興寺)가 자리하고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의 격전끝에 승병들은 모두 죽고 절은 불에 타버렸다고 전한다.

이 탑은 원래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국보)과 함께 있었으나, 석등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기고 석탑만이 남아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위층기단에는 모서리 기둥을 굵직하게 조각하였다. 한 면을 둘씩 나누어서 앞면에는 인왕상(仁王像)을, 양 측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뒷면에는 보살상(菩薩像)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각 층 몸돌에는 두꺼운 모서리기둥을 조각하였다. 1층 몸돌의 각 면에는 연꽃대좌 위에 앉아 있는 여래상(如來像)을 조각하였고, 2층 이상의 몸돌은 훨씬 작아지는 모습이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 밑은 수평을 이루고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 남아 있고 그 위에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있다.

이 석탑은 특히 각 부분의 풍부한 조각들이 눈에 띄는데, 보존상태가 좋고 조각된 상들도 뚜렷하다. 탑신에 비해 밑의 기단부가 너무 커 보이는 경향이 있으나 매우 안정된 느낌을 주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이다.

This three-story stone pagoda is located near a stream on the west side of Jungheungsanseong Fortress. Jungheungsa Temple is said to have existed around this site, established by a great priest named Doseon during the reign of King Gyeongmun of the Silla Dynasty. Nonetheless, the temple was burnt down, and its monks, who turned into soldiers to fight against the Japanese forces who invaded Korea in 1592 (during the Joseon Dynasty), were all killed. A Twin-Lion Stone Lantern of Jungheungsanseong Fortress in Gwangyang (National Treasure No. 103), now moved to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was originally located here together with this three-story stone pagoda with a two-tier stylobate. Each corner of the stylobate's upper part has engraved pole patterns, and two guardian gods of the Four Guardian Kings and a pair of Buddhas are carved on the front, sides, and back facets of the stylobate. Each of the roof stones and core stones of the main body of the pagoda is made of a single stone. The image of Buddha seated on a lotus pedestal is carved on each side of the first story between pole patterns carved on each corner. Moreover, the core stones of the main body for the two stories above are significantly smaller than the core stone of the first story, and the roof stones with straight eaves have a three-tier cornice. Of the finial, only the finial base and a ball-shaped decoration remain. The pagoda is heavily decorated with carved images and patterns, which are all in good condition. The stylobate, being much larger than the body, keeps its balance and sense of stability. This stone pagoda was made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位于中兴山城西边河畔的三层石塔。中兴山城曾是新罗景文王时期道诜大师创建的中兴寺所在地,据说壬辰倭乱时期僧兵们在此与倭兵激战并全部牺牲,寺院也被烧毁。这尊石塔的特别之处在于各部分丰富多彩的雕刻十分引人瞩目,保存状态良好,雕像也很清晰。与塔身相比,底端的基坛部位过大,但却具有一种稳定感,是一座统一新罗时期的石塔。

中興山城西側の小川近くの三重石塔である。中興山城には新羅景文王の時に道詵大師が建てた中興寺があったが、壬辰倭乱の時豊臣軍との激戦の際に僧兵は皆討たれ、寺は燃えてしまったと伝えられている。この石塔は特に各部分の豊かな彫刻が目を引き、保存状態が良く、彫刻された像もくっきりと残っている。塔身に比べて基壇部が大きすぎる方ではあるが、全体的に安定した感じを与える統一新羅時代の石塔である。

조사연구자료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