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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구례 윤문효공 신도비 (求禮 尹文孝公 神道碑)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1975.03.31
소 재 지 전남 구례군 산동면 이평리 산91-1번지
시 대 조선 중종 15년(1521)
소유자(소유단체) 남원윤씨 종중 
관리자(관리단체) 남원윤씨종중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안내판 설명
개별안내판

윤문효공 신도비 보물 제 584호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이평리 산 91-1 이 비석은 조선조의 문신 문효공(文孝公) 윤효손(尹孝孫 · 1431-1503)의 신도비(神道碑)로서 1519년(중종 14년)에 세웠고 1975년에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윤효손은 1453년(단종 1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경상도 관찰사, 대사헌 형조판서 및 좌참찬 등을 역임하고 경국대전과 국조오례의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비문은 우의정 겸 대제학 신용개 (申用漑)가 지었고 글씨는 우참찬 신공제(申公濟)가 썼으며 전액(篆額)은 전라도 관찰사 이언호(李彦浩)가 쓰고 비 뒷면의 음기(陰記)는 대제학 이행(李荇)이 지었다. 비명(碑銘)이 새겨진 비신은 1.2m 높이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놓인 연꽃 모양의 타원형 앙련대좌(仰蓮臺座)와 거북 모양의 대좌인 귀부(龜趺) 위에 세워져 있다. 용 모양을 조각한 이수(?首)에는 지상에 서려 있어 아직 승천하지 않은 반룡(蟠龍)을 새겨 놓았다. 비석에 조각된 연꽃, 구름 및 용 등의 다양한 조각은 그 디자인이 특히 우수하다. 비석의 전체 높이는 5.27m이며 조선 전기를 대표할 만한 뛰어난 작품이다.

문화재 설명

신도비란 죽은 사람의 생전의 행적을 기록하여 묘 앞에 세우는 비이다. 조선시대에는 정2품이상의 관직에 있는 사람 중 위업을 세웠거나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모범이 될 때에 신도비를 세워 기리도록 하였다 한다.

이 비는 조선시대의 문신 윤효손의 신도비이다. 윤효손(1431∼1503)은 단종 원년(1453)에 과거에 급제하여 황해도관찰사, 형조판서, 우참찬 등을 두루 거쳐 좌참찬에 이르렀다. 성종때에는『경국대전』과『오례의주』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연산군 9년(1503)에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거북받침돌은 앞발의 형태가 특이한데, 보통 머리쪽을 향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앞발은 뒤로 구부려 발톱을 아래의 연꽃받침에 붙이고 있다. 머릿돌에 새겨진 용의 조각은 사실성이 뛰어나며, 꼭대기에는 둥근 돌을 얹어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비문에는 윤효손의 평생업적과 자손들의 계보 및 그의 충효와 인품을 기리는 글들이 적혀 있다.

조선 중종 14년(1519)에 세워진 비이다. 비문은 신용개가 짓고, 신공제가 글씨를 썼는데, 글씨는 고려시대에 비해 필력이 떨어진다.

Sindobi are steles inscribed with biographical information of a deceased person. These steles are usually placed in front of a grave. In Joseon, sindobi were erected for deceased court officials of rank two or higher who were noted for their lifetime accomplishments or scholarship, to set examples for future generations to follow. This stele belongs to Yun Hyo-son (1431-1503), a scholar-official of Joseon. Yun Hyo-son was admitted to government service in 1453 (the 1st year of King Danjong’s reign) through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and served successively as the Governor of Hwanghae-do, Hyeongjo Panseo (Justice Minister), Uchamjan (Vice Minister of the Right) and finally Jwachamjan (Vice Minister of the Left). During King Seongjong’s reign, he oversaw the publication of Gyeongguk daejeon (National Code) and wrote Oryeuiju (Five Rites). Yun Hyo-son died in 1503 (the 9th year of King Yeonsangun’s reign) and was awarded the posthumous title “Munhyo.” The stele is mounted on a tortoise-shaped base and has a head stone at the top. The front paws of the tortoise are bent inward, with the claws pointed down toward the lotus-sculpted support below, while in other tortoise stones, they are most often in the direction toward which the head is facing. The head stone features a highly realistically-sculpted dragon. The head stone is decorated with a round stone ornament at the top. The epigraph on the stele lists the lifetime accomplishments of Yun Hyo-son and praises his integrity and virtues. The inscription also includes the genealogy of his descendants. This stele was made in 1519 (the 14th year of King Jungjong’s reign). The text of the epigraph was composed by Sin Yong-gae and was inscribed by Sin Gong-je. The quality of the calligraphy is something of a regression compared to the Goryeo Period.

神道碑位于墓前,用来记录死者的生平事迹。据说朝鲜时代为正二品以上、有杰出功绩、学识渊博成为后世典范的官员建造神道碑以示纪念。此碑建于朝鲜中宗14年(1519),碑文由申用溉撰写、申公济题写。与高丽时代的书法相比,笔力略逊一筹。

神道碑とは、なくなった人の生前の行跡を記録し、墓前に立てる碑である。朝鮮時代には正二位以上の官職にいる者の中で、偉業を立てたり、学問に優れて後世に模範になる時には、神道碑を立てて称えるようにした。この碑は朝鮮時代中宗14年(1519)に建てられたものである。碑文は申用漑が作り、辛公済が字を書いたが、字は高麗時代に比べ、筆力は劣っ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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