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우리지역 문화재

  • 인쇄

사적

양주 대모산성 (楊州 大母山城)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수량/면적 57,742㎡
지정(등록)일 2013.06.21
소 재 지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789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양주시 
문화재 담당부서 : 보존정책과- 상세문의

양주 대모산성은『三國史記』,『世宗實錄』에서 매초성(買肖城)의 기사를 근거로 매초성(買肖城)으로 비정(比定) 되기도 하며, 『新增東國輿地勝覽』,『萬機要覽』,『京畿誌』,『京畿邑誌』,『輿圖備志』,『大東地志』등에서 양주 대모성산(大母城山), 대모산성(大母山城)의 기록이 확인된다.

임진강과 한강 유역을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한 대모산성은 주변의 산성 중 주 교통로에 위치하여 단지 방어만을 목적으로 축조된 것이 아니라, 행정치소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복합적 성격의 유적으로, 양주지역의 전술적 요충지 또는 치소로서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장방형으로 가공한 화성암계 변성암으로 높이 약 7.5m 내외의 외벽을 쌓아 올린 다음 그 외부에 삼각형 모양의 단면형태를 띤 4∼5m 높이의 보축을 덧대어 축조한 우수한 축성술과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현문식(懸門式) 성문구조, 축조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성벽 등 6∼7세기의 고대 축성기술을 구체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1980년부터 1998년까지 7차례 이루어진 발굴조사로 635점의 금속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최고 관리 계층이 소유할 수 있었던 청동 팔찌, 청동 도장 등은 대모산성의 위상을 보여주며, 각종 농구류, 공구류 등을 통해 대모산성을 중심으로 그 관할지의 농업·수공업 생산력이 높았고 주변지역에서 생산된 많은 농산물과 수공업품이 대모산성으로 집중·관리되어 물류 거점의 역할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