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 昆池岩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3호 곤지암 바위는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6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경기도 광주시의 ‘곤지암’이라는 지명유래담(地名由來談:지명의 뜻이나 해당 지역이 생겨난 바에 대한 이야기)을 간직한 화강암질의 바위이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1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고, 큰 바위 상부(上部)에는 수령이 약 400년 된 향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곤지암이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바위 모양이 마치 고양이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묘(猫)바위’라고 불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왜군에게 패해 순국한 신립(申砬)의 시신을 병사들이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냈는데, 그 후로 이 바위 앞에서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아 말에서 내려서 걸어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올곧은 선비가 이 앞을 지나가다 신립 장군의 묘를 찾아가, 왜 오가는 행인을 괴롭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바위를 내리쳐서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그 옆에는 큰 연못이 생겼다. 이후로는 괴이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마을 뒷산 끝자락, 연못이 있는 곳의 바위라고 하여 ‘곤지암(崑池岩)’이라 불렀다고 한다. 1872년 지방지도나『중정남한지(重訂南漢誌)』에는 ‘곤지암(崑池岩)’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현재는 ‘곤지암(昆池岩)’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신립 장군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곤지암’ 주변에는 본래 연못이 있었고, 이 연못은 노곡천, 곤지암천, 경안천과 연결되어 한강으로 흘러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현재는 초등학교와 상가 건축 등 도시 개발이 이루어져 옛날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곤지암(昆池岩)’은 화강암질의 바위로 큰 바위와 작은 바위 두 개가 1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큰 바위 상부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 400년 된 향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곤지암이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바위모양이 마치 고양이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묘(猫)바위’라고 불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한성부 판윤(判尹) 겸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였던 신립(申砬) 장군이 빈약한 병력으로 충주 달천을 뒤에 두고 배수진을 쳐서 적과 대결했으나 패하여 탄금대에서 몰려오는 왜군과 싸우다 강물에 투신하였다. 그의 시신을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냈는데 그 후로 묘 바위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한다. 누구든 말을 타고 이 앞을 지나려고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아 말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 그러던 중 어떤 장군이 이 앞을 지나가다가 신립 장군의 묘을 찾아가 ‘왜 오가는 행인을 괴롭히느냐’고 핀잔을 주었더니, 갑자기 바위가 벼락을 맞아 둘로 갈라지고 그 옆에 연못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마을 뒷산 끝자락, 연못이 있는 곳의 바위라고 하여 곤지암(崑池岩)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곤지암 昆池岩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3호 곤지암 바위는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6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경기도 광주시의 ‘곤지암’이라는 지명유래담(地名由來談:지명의 뜻이나 해당 지역이 생겨난 바에 대한 이야기)을 간직한 화강암질의 바위이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1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고, 큰 바위 상부(上部)에는 수령이 약 400년 된 향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곤지암이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바위 모양이 마치 고양이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묘(猫)바위’라고 불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왜군에게 패해 순국한 신립(申砬)의 시신을 병사들이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냈는데, 그 후로 이 바위 앞에서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아 말에서 내려서 걸어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올곧은 선비가 이 앞을 지나가다 신립 장군의 묘를 찾아가, 왜 오가는 행인을 괴롭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바위를 내리쳐서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그 옆에는 큰 연못이 생겼다. 이후로는 괴이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마을 뒷산 끝자락, 연못이 있는 곳의 바위라고 하여 ‘곤지암(崑池岩)’이라 불렀다고 한다. 1872년 지방지도나『중정남한지(重訂南漢誌)』에는 ‘곤지암(崑池岩)’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현재는 ‘곤지암(昆池岩)’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신립 장군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곤지암’ 주변에는 본래 연못이 있었고, 이 연못은 노곡천, 곤지암천, 경안천과 연결되어 한강으로 흘러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현재는 초등학교와 상가 건축 등 도시 개발이 이루어져 옛날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곤지암(昆池岩)’은 화강암질의 바위로 큰 바위와 작은 바위 두 개가 1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다. 큰 바위 상부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 400년 된 향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곤지암이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바위모양이 마치 고양이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묘(猫)바위’라고 불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한성부 판윤(判尹) 겸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였던 신립(申砬) 장군이 빈약한 병력으로 충주 달천을 뒤에 두고 배수진을 쳐서 적과 대결했으나 패하여 탄금대에서 몰려오는 왜군과 싸우다 강물에 투신하였다. 그의 시신을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냈는데 그 후로 묘 바위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한다. 누구든 말을 타고 이 앞을 지나려고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아 말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 그러던 중 어떤 장군이 이 앞을 지나가다가 신립 장군의 묘을 찾아가 ‘왜 오가는 행인을 괴롭히느냐’고 핀잔을 주었더니, 갑자기 바위가 벼락을 맞아 둘로 갈라지고 그 옆에 연못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마을 뒷산 끝자락, 연못이 있는 곳의 바위라고 하여 곤지암(崑池岩)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Gonjiam Rock is a granite formation with big and small rocks located at a distance of 1m from each other. A 400-year old juniper tree, which has been designated as a protected tree, grows on the upper part of the big rock. Before the rock was given its present name, it was called “Cat Rock” because it looked like the animal. During the Imjin War, General Shin Lip, who was the Chief Magistrate of Hanseong and Special Military Envoy of Three Provinces, confronted the enemy with his meager force of soldiers by blocking the retreat route with their backs to Dalcheon of Chungju, but was defeated. He fought against the Japanese soldiers rushing in from Tangeumdae, and drowned by throwing himself into the river. His body was moved to Gwangju for his funeral, but after that, strange things occurred at Cat Rock. Whenever, someone tried to pass in front of the rock while riding a horse, the horse’s hooves would get stuck to the ground and wouldn’t budge, so the rider had to dismount and walk. Then, one day, a general passed by and stopped by General Shin Lip’s tomb and admonished him saying “Why are you bothering the passers-by?” It is said that, there and then, the rock was hit by a lightning and split into two, and a pond was formed beside it. Later, the rock came to be called Gonjiam because it is located at the base of the village mountain where there is a pond.
“昆池岩”是花岗岩材质的岩石,大岩石和小岩石之间有1米距离,大岩石上有香树,该桧树被指定为保护树,树龄约400年。 据传,出现“昆池岩”的地名之前,由于岩石形状像猫,所以又称为“猫岩”。壬辰倭乱时汉城府判尹兼三道都巡边使申砬将军以微弱的兵力,背向忠州达川与敌人背水一战却战败,在弹琴台与蜂拥而来的倭寇对战过程中投河而死。他的尸体被搬到广州办理了丧事,其后在猫岩发生了非常奇怪的事情。不管是谁骑着马路过这里,马蹄都会粘在地上无法动弹,只能下马走路。后来有位路过此地的将军找到申砬将军的坟墓质问“为何折磨过路人?”,话音刚落,突然岩石被雷劈成两半,旁边就出现了莲池。而后因为岩石位于村落后山山脚有莲池的地方,所以被称为“昆池岩”。
<崑池岩>は花崗岩質の岩で、大岩と小岩が1m間隔で並んでいる。大岩の上部には保護樹に指定された樹齢およそ400年のイブキが立っている。 崑池岩という地名が付けられる前は、岩がまるで猫と似ていることから「ミョバウィ(猫岩)」と呼ばれた。文禄の役で、漢城府の判尹兼三道都巡辺使であったシン・リプ(申砬)将軍が貧弱な兵力を率いチュンジュ(忠州)のタルチョン(疸川)べりに背水の陣を敷き、敵と戦ったが敗北し、弾琴台からやってくる日本軍と戦ったあげく、川に身を投げて自殺した。彼の遺体をクァンジュ(広州)に移し、葬式を行ったが、そのときから墓の岩に妙なことが起こったらしい。馬に乗ってここを通り過ぎようと者はみな、ひづめが地にくっついて動けなくなってしまい、馬から降りて歩かざるを得なかったという。そんな中、ある将軍がここを通り過ぎる途中で申砬将軍の墓を訪ね、「どうして行人をいじめるのだ」と責めたところ、いきなり岩に雷が落ちて割れてしまい、その横に池ができたという説話が伝わる。その後、村の裏山の裾、池のあるところの岩という意味で、崑池岩と呼ばれるようになったとい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