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만고 충신 박제상의 생가로 구성되고 있으며, 사당 안에는 박제상공과 그의 아들 백결선생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사당 앞에는 박제상의 업적을 적은 효충사 석비가 세워져 있다.
박제상의 호는 관설당(觀雪堂)이며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눌지왕 2년(418)에 고구려에 들어가 볼모로 잡혀 있던 왕제(王弟) 복호(卜好)를 데려오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역시 볼모로 잡혀 있던 왕제(王弟) 미사흔(味斯欣)을 계교로 탈출시키고 자신은 스스로 잡히는 몸이 되었다. 왜왕은 제상을 모질게 고문 하면서 신하로 삼으려 했으나 제상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림의 소, 돼지가 될지언정 너희 나라의 신하는 되지 않겠다" 라는 단호함에 왜왕도 제상의 죽음을 두고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