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실상사 석장승 南原 實相寺 石長栍 국가민속문화재 제15호 이 돌장승들은 실상사를 지키는 상징적인 조각품으로, 원래는 이곳 냇가에 모두 네 개가 있었다. 절로 가는 도중 내를 건너기 전에 두 개의 장승이 서 있었는데, 그중 오른쪽 것이 1936년 홍수에 쓸려 내려가 현재는 세 개만 남았다. 장승들의 높이는 대략2.5~2.9m, 너비 40~50cm 가량이며,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커다란 귀를 갖는 등 비슷한 양식을 보인다. 장승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같은 시기인 조선 영조 1년(1725)에 세운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남원 실상사 석장승 南原 實相寺 石長栍 국가민속문화재 제15호 장승은 마을 또는 절 입구에 세운 사람 머리 모양의 기둥으로 예로부터 사찰이나 지역 간의 경계를 나타내거나 이정표 혹은 수호신의 역할을 했다. 남원 실상사 석장승은 실상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내를 건너기 전에 2기, 시내를 건너 2기가 있었으나 시내를 건너기 전의 2기 중 1기는 1936년 홍수에 쓸려 내려가 현재는 3기가 남아 있다. 장승들의 크기는 높이 2.5~2.9m, 너비 40~50cm가량이다. 모두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으며 큼지막한 주먹코와 튀어나온 둥근 눈, 커다란 귀가 특징적이다. 몸체에 각각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과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는 글자와 ‘옹정삼년을사삼월입(雍正三年乙巳三月立)’이라는 명문을 새겨 놓아 조선 영조 1년(1725)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실상사 입구에 있는 3기의 돌장승 역시 경계표시와 함께 경내의 부정을 막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여진다.
만수천의 해탈교를 건너기 전 마을쪽에 있는 돌장승이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고, 해탈교를 건너자 마자 길 좌우에 2기의 돌장승이 마주보고 서 있다. 오른쪽 논두렁 가에 있는 돌장승이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고, 왼쪽의 괴목 아래 서 있는 돌장승이 대장군(大將軍)이다.
3기의 석장승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머리에 벙거지를 쓰고 있으며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주먹코이다. 윗 송곳니 두 개가 삐져나와 험상궂은 듯 하지만 입가의 미소가 순한 심성을 드러내고 있다. 길게 수염이 표시되고 몸체에는 좌우 각각 '상원주장군', '대장군', '옹호금사축귀장군'이라는 이름이 새겨져있다. 다만 수염이 반대로 향하고 있어 상원주장군과 대장군은 대칭적인 한 쌍을 표현한 것 같다. 대장군의 기단석(基壇石)과 상원주장군의 뒷면에 있는 기록을 통해 실상사 석장승들은 조선 영조 원년(1725)과 영조 7년(1731)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남원 실상사 석장승 南原 實相寺 石長栍 국가민속문화재 제15호 이 돌장승들은 실상사를 지키는 상징적인 조각품으로, 원래는 이곳 냇가에 모두 네 개가 있었다. 절로 가는 도중 내를 건너기 전에 두 개의 장승이 서 있었는데, 그중 오른쪽 것이 1936년 홍수에 쓸려 내려가 현재는 세 개만 남았다. 장승들의 높이는 대략2.5~2.9m, 너비 40~50cm 가량이며, 머리에 모자를 쓰고 튀어나온 둥근 눈에 주먹코와 커다란 귀를 갖는 등 비슷한 양식을 보인다. 장승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같은 시기인 조선 영조 1년(1725)에 세운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남원 실상사 석장승 南原 實相寺 石長栍 국가민속문화재 제15호 장승은 마을 또는 절 입구에 세운 사람 머리 모양의 기둥으로 예로부터 사찰이나 지역 간의 경계를 나타내거나 이정표 혹은 수호신의 역할을 했다. 남원 실상사 석장승은 실상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시내를 건너기 전에 2기, 시내를 건너 2기가 있었으나 시내를 건너기 전의 2기 중 1기는 1936년 홍수에 쓸려 내려가 현재는 3기가 남아 있다. 장승들의 크기는 높이 2.5~2.9m, 너비 40~50cm가량이다. 모두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으며 큼지막한 주먹코와 튀어나온 둥근 눈, 커다란 귀가 특징적이다. 몸체에 각각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과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이라는 글자와 ‘옹정삼년을사삼월입(雍正三年乙巳三月立)’이라는 명문을 새겨 놓아 조선 영조 1년(1725)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곳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이다. 장승들의 표정이 험상궂기는커녕 오히려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이나 사찰 입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함과 동시에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 실상사 입구에 있는 3기의 돌장승 역시 경계표시와 함께 경내의 부정을 막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여진다.
만수천의 해탈교를 건너기 전 마을쪽에 있는 돌장승이 옹호금사축귀장군(擁護金沙逐鬼將軍)이고, 해탈교를 건너자 마자 길 좌우에 2기의 돌장승이 마주보고 서 있다. 오른쪽 논두렁 가에 있는 돌장승이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이고, 왼쪽의 괴목 아래 서 있는 돌장승이 대장군(大將軍)이다.
3기의 석장승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머리에 벙거지를 쓰고 있으며 크고 둥근 눈에 뭉툭한 주먹코이다. 윗 송곳니 두 개가 삐져나와 험상궂은 듯 하지만 입가의 미소가 순한 심성을 드러내고 있다. 길게 수염이 표시되고 몸체에는 좌우 각각 '상원주장군', '대장군', '옹호금사축귀장군'이라는 이름이 새겨져있다. 다만 수염이 반대로 향하고 있어 상원주장군과 대장군은 대칭적인 한 쌍을 표현한 것 같다. 대장군의 기단석(基壇石)과 상원주장군의 뒷면에 있는 기록을 통해 실상사 석장승들은 조선 영조 원년(1725)과 영조 7년(1731)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Stone Guardian Posts were a form of folk religion and were placed at the entrance of villages or temples to mark boundaries or to ward off evil spirits, serving as a guardian god. Three stone guardian posts standing at the entrance of Silsangsa Temple seem to have been placed there to mark boundaries or to prevent evil spirits from entering the temple. A stone guardian post on the village side before crossing Haetalgyo Bridge over the Mansucheon Stream has the name Ongho Geumsa Chukgwi Janggun (General Ongho Geumsa Chukgwi) inscribed on its body. Immediately crossing the bridge, there are two stone guardian posts on each side of the stream, facing each other. The one on the right, located on the bank of a rice paddy, is Sangwonju Janggun (General Sangwonju); the other one on the right, located under a huge tree, is Dae Janggun (Great General). The three posts look almost identical, wearing a hat with big round eyes and stubby nose. The two protruding upper canine teeth make them look scary, but a smile reveals their gentle nature. They have long goatees, but the Sangwonju Janggun and Dae Janggun posts have their goatee in the opposite direction to each other; this seems to imply that the two were intended to be a symmetrical pair. On their bodies, the names Sangwonju Janggun (General Sangwon) and Dae Janggun (Great General) are inscribed. The inscription on the foundation stone of the Daejanggun post and the one on the back side of the Sangwonju Janggun post tell us that they were made in the first year of King Yeongjo’s reign (1725) and the 7th year of King Yeongjo’s reign (1731), respectively.
位于实相寺入口的三个石长丞。长丞是民间信仰的一种形态,一般立在村庄或寺庙入口表示界线,同时还有辟邪驱鬼的守护神作用。该长丞亦是表示界线的同时为了辟邪驱鬼而立的。从寺庙入口不远处隔着一条小溪有两个长丞相对而立。一个在田埂上,另外一个在高大的古树下,间隔10米。三个长丞相貌非常相似,头戴瓦楞帽,眼睛大而圆,鼻子粗短。嘴里露出了两个上犬齿,虽然一副凶相,但是嘴角露着温顺的笑容。有长长的胡须,身上左右两侧刻着‘上元周将军’、‘大将军’、‘拥护金沙逐鬼将军’的字样。但是胡须方向相反,似乎上元周将军和大将军是对称的一对雕刻物。根据支撑左侧长丞的基坛石上的记录,这些长丞建造于朝鲜英祖元年(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