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전무 勝戰舞 국가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는 임진왜란 때 싸움터나 병선위에서 장졸들의 사기를 돕고 망중한(忙中閑)의 여가에 추게 하였으며 승전 후에는 이를 축하하여 삼도수군통제사의 영문(세병관)에서 하례시와 군점시, 그리고 이 충무공의 춘추향사(春秋享祀)와 탄신제, 기신제(忌辰祭)때에는 사당에서 헌무하였다. 승전무는 1896년까지 취고수청(吹鼓守廳), 교방청(敎坊廳), 악공조합(樂工組合)등 제도 밑에 양성, 조선조 말엽 교방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기녀들에 의해 추어오던 춤으로, 1968년 통영북춤과 1987년 통영칼춤이 합설되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 전승되어오는 향토색이 짙은 민속춤으로 외적형식미와 내적 흥취성을 고루 갖춘 예술성이 뛰어난 춤이다. 북춤은 원무 4인이 청·백·홍·흑의 몽두리를 입고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팔에 한삼을 끼고 손에 2개의 북채를 들며, 통영칼춤은 조선시대 군복을 변형한 차림으로 머리에 전립을 쓰고 붉은 치마에 흰저고리, 검정퀘자에 홍띠를 매고 색동한삼과 칼한쌍으로 이루어져있다. 승전무의 악은 민간제례악인 통영삼현육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악곡으로는 충무공을 찬양하는 북노래(창사), 염불도드리, 타령, 느린타령, 잦은타령, 굿거리로 구성되어있다.
승전무는 경남 통영에서 전승되어 온 북춤, 칼춤, 입춤이다. 이 춤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영문(營門)에서 각종 의식․하례(賀禮), 이순신 사당의 춘추향사․생신제․기신제에 헌무(獻舞)한 춤이다. 승전무의 북춤은 궁중의 무고와 흡사한 춤으로 활옷을 입고 양손에는 한삼을 낀 원무 4명이 중앙에 북을 놓고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북을 울리며 춤을 추고, 협무 12명이 주위를 둘러싸고 돌면서 창(唱)을 부른다. 승전무의 흩어졌다 모여드는 형태는 삼진삼퇴를 뜻하며, 전체가 화려하고 웅장하면서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영산회상’가운데 삼현도드리와 타령을 반주음악으로 쓰며, 춤가락은 순박하면서 예스럽고 독특한 향토적 특색을 갖고 있다. 칼춤의 의상은 홍치마에 흰저고리, 흑쾌자, 전립, 홍띠, 색동한삼 등을 갖추며 무구로 1쌍의 칼을 든다. 승전무의 우아한 춤사위와 가락 그리고 치밀한 짜임새는 예술적 가치가 높고 전통에 뿌리를 둔 춤이다.
승전무 勝戰舞 국가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는 임진왜란 때 싸움터나 병선위에서 장졸들의 사기를 돕고 망중한(忙中閑)의 여가에 추게 하였으며 승전 후에는 이를 축하하여 삼도수군통제사의 영문(세병관)에서 하례시와 군점시, 그리고 이 충무공의 춘추향사(春秋享祀)와 탄신제, 기신제(忌辰祭)때에는 사당에서 헌무하였다. 승전무는 1896년까지 취고수청(吹鼓守廳), 교방청(敎坊廳), 악공조합(樂工組合)등 제도 밑에 양성, 조선조 말엽 교방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기녀들에 의해 추어오던 춤으로, 1968년 통영북춤과 1987년 통영칼춤이 합설되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 전승되어오는 향토색이 짙은 민속춤으로 외적형식미와 내적 흥취성을 고루 갖춘 예술성이 뛰어난 춤이다. 북춤은 원무 4인이 청·백·홍·흑의 몽두리를 입고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팔에 한삼을 끼고 손에 2개의 북채를 들며, 통영칼춤은 조선시대 군복을 변형한 차림으로 머리에 전립을 쓰고 붉은 치마에 흰저고리, 검정퀘자에 홍띠를 매고 색동한삼과 칼한쌍으로 이루어져있다. 승전무의 악은 민간제례악인 통영삼현육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악곡으로는 충무공을 찬양하는 북노래(창사), 염불도드리, 타령, 느린타령, 잦은타령, 굿거리로 구성되어있다.
승전무는 경남 통영에서 전승되어 온 북춤, 칼춤, 입춤이다. 이 춤은 삼도수군통제영의 영문(營門)에서 각종 의식․하례(賀禮), 이순신 사당의 춘추향사․생신제․기신제에 헌무(獻舞)한 춤이다. 승전무의 북춤은 궁중의 무고와 흡사한 춤으로 활옷을 입고 양손에는 한삼을 낀 원무 4명이 중앙에 북을 놓고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북을 울리며 춤을 추고, 협무 12명이 주위를 둘러싸고 돌면서 창(唱)을 부른다. 승전무의 흩어졌다 모여드는 형태는 삼진삼퇴를 뜻하며, 전체가 화려하고 웅장하면서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영산회상’가운데 삼현도드리와 타령을 반주음악으로 쓰며, 춤가락은 순박하면서 예스럽고 독특한 향토적 특색을 갖고 있다. 칼춤의 의상은 홍치마에 흰저고리, 흑쾌자, 전립, 홍띠, 색동한삼 등을 갖추며 무구로 1쌍의 칼을 든다. 승전무의 우아한 춤사위와 가락 그리고 치밀한 짜임새는 예술적 가치가 높고 전통에 뿌리를 둔 춤이다.
As a drum dance handed down in Tongyeong (Chungmu), Gyeongsangnam-do, it was performed by barmaids and boy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1592-1598), Admiral Yi Sun-sin had this dance played to boost the morale of his troops or celebrate the victory of battles. Many dances performed in Tongyeong, a naval town, were called Seungjeonmu (Victory Dance). Only the Mugo (Drum Dance) was designated as important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under the name Seungjeonmu in 1968. Nine years later, Geommu (Sword Dance) was included in said designation. Looking at how a victory dance is performed, four dancing women in ceremonial dress with long white cuffs make movements, gathering in the direction of the drum placed at the center and then scattering in four directions with soft steps after beating the drum; thus creating a grand, joyous atmosphere. Samhyeon dodeuri (dodeuri rhythm music by three strings) and taryeong (Korean folk song) were used as accompaniment in music. The overall dance movements are simple and antiquated, carrying unique local characteristics. Dancers performing a sword dance wear white jacket, red skirt, black sleeveless coat, military official’s hat, red belt, and jacket with long, multicolor-striped undershirts while holding a sword in each hand. The tools used and dancers’ movements in Seungjeonmu are similar to the Mugo performed at the Royal Palace. The elegant dance movements, melodies of music, and overall exquisite arrangement make it a dance with high artistic and traditional value.
胜战舞是在庆南统营(忠武)流传下来的鼓舞,宫中称“舞鼓(鼓舞)”,由妓女共舞的男童传承。壬辰倭乱时期李忠武公为了慰劳手下士兵的劳苦、振奋士气批准跳此战舞。胜利后,为了庆祝胜利又允许跳此舞。原本统营地区庆典中的舞鼓、剑舞等舞蹈均是在驻军扎营之地所跳的舞蹈,故称胜战舞。1968年仅将舞鼓以胜战舞之名指定为重要的无形文化财,1987年又追加了剑舞。胜战舞的服装、使用的道具、舞蹈内容等与宫廷舞鼓相似,优雅的舞姿与节拍、紧凑的节律变化具有很高的艺术价值以及传统性的优秀舞蹈。
勝戦舞は慶尚南道統営(忠武)に受け継がれてきた太鼓の踊りで、宮中では「舞鼓(鼓踊り)」といい、遊女と踊りをする男子たちによって受け継がれた。壬辰倭乱当時には李忠武公が将軍と兵士たちの苦労を慰労し、士気を上げるために舞わせ、戦争に勝った後には祝いの意味で舞わせた。もともと統営地域の宴会で行われた舞鼓・剣舞などの全ての舞いは軍隊のあった所で舞ったことから勝戦舞と呼ばれた。そのうち、1968年に「舞鼓」だけが勝戦舞という名前で重要無形文化財に指定され、1987年に剣舞が追加された。勝戦舞は衣装や使われる道具、舞いの内容などが宮中舞鼓に似ている踊りで、優雅な振りと調子、そして緻密な組み合わせは芸術的価値が高く、昔ながらの伝統を受け継いでいる優れた踊りであ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