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의 여러 이본 중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지도이다. 고산자(古山子) 김정호(金正浩, 생몰년 미상)가 1861년(철종 12)에 제작한 이 지도는 조선의 지도 발달에서 정점에 있으면서 고지도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전국의 남북을 22첩으로 나누어 분첩절첩식(分疊折帖式) 형태로 제작하여 모두를 아래 위로 맞추면 전국지도가 된다. 지도의 제1첩에는 방안표, 범례인 지도표와 지도유설, 경도오부지도 등과 함께 조선의 최북단인 온성(穩城), 종성(鐘城), 경원(慶源) 일대의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지도유설」에서는 중국의 지도와 지리지의 기원을 말하고 그것들이 가지는 중요성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면서, 정치·경제·국방·학문연구의 모든 분야에서 지도와 지리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그 편찬목적을 밝히고 지도제작에 있어 정확한 측정원리를 제시하였다.
지도의 각 첩에서 한면은 동서 80리, 남북 120리를 포괄하고 있다. 목판은 2면을 담고 있으며, 양면에 판각되어 있다. 지도를 제작하는데 약 70장 내외의 목판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2첩을 함께 합치면 남~북 약 6.7m 동~서 3.8m의 대형 지도가 되며 축적은 약 16만분의 1로 알려져 있다.
지도에는 해안선 도서, 산과 하천의 지형, 지방 군현 등이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그려져 있다. 각 군현간을 잇는 도로에는 10리마다 방점이 찍혀 있어 군현간 거리 측정이 가능하다. 각 군현 안에서는 영아(營衙), 읍치(邑治), 성지(城池), 진보(鎭堡), 창고(倉庫), 목소(牧所), 봉수(烽燧), 능침(陵寢), 방리(坊里), 고현(古縣), 고진보(古鎭堡), 고산성(古山城), 도로(道路) 등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 제작자인 김정호는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이다. 오직 지도를 만들고 지리지를 펴내는 데에만 일생을 바쳤다. 지리지로서 『여도비지』,『동여도지』, 『대동지지』를 편찬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구도』(1834)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 『대동여지도』는 이전에 만들어진 지도와 현지 답사를 바탕으로 여러 해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이전의 필사본 지도와는 다르게 목판본으로 제작함으로써 지리정보가 사회에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지도는 철종 12년(1861)에 처음 찍어낸 뒤 고종 1년(1864)에 다시 재판되었다. 초판과 재판의 간행부수는 확실하지 않으나 현재 30여점이 넘는 판본이 국내외에 소장된 것으로 볼 때 적지 않게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에 만들어진 축적 약 90만분의 1의 『대동여지전도』는 이 지도를 축쇄하여 만들어 보급된 것이다.
각 기관에 소장된 지도 중 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지도의 표제는 짙은 청색으로 염색된 면포로 되어 있으며 표제는 「대동여지전도」로 되어 있다. 이는 소장자가 보관하면서 붙인 것으로 보인다. 제1첩은 표제-지도유설-통계표-도리표-경원·온성·종성-지도표-오부도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아(營衙), 진보, 능침과 봉수는 적색으로, 읍치, 역참은 황색으로 가채되어 있으며 읍치 중 성이 축조되어 있는 경우 황색의 원에 적색 실선으로 가채되어 있다.
This is a map of Korea made by the famed cartographer Kim Jeong-ho (? -1864) in 1861, the 12th year of the reign of King Cheoljong (1849-63), and it ran to a second edition in the first year of King Gojong' reign (1864). A practical science scholar and geographer, Kim Jeong-ho made the map, Daedong yeojigo (Map of Korea), based on on-the-spot scientific surveys and thorough research over several years. Reduced to a scale of 1:160,000, it is by far the most accurate and detailed map made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t comprises 22 woodblock-printed panels, each covering an area of 32km east to west and 48km north to south. The panels unfold to form a complete map of Korea 3m wide and 7m long. Distance was indicated by a dot on the road line every 10 li (3.9km). It also has a supplement explaining the purpose of compilation and the principle of making the map. The outstanding feature of this map is its accuracy. One notable achievement of 18th and 19th century of Joseon was the production of maps of the nation's territory. The tradition of making maps that were based on actual surveys started from early Joseon and achieved its pinnacle in Kim Jeong-ho's map. Daedong yeojido is considered to be the finest example in existence of the traditional map making craft.
《大东舆地图》是由22帖构成的韩国木版地图。作为朝鲜时代最大、最古老的科学地图,是制作此地图的金正浩在70余张木版上雕刻,并制作发行的22帖地图。金正浩是朝鲜后期的实学者、地理学者。他生活贫困却将一腔心血倾注于制作地图和发行地理书籍方面,当时社会视个人制作地图是违反天意,为此编制过程中经历了重重困难。《大东舆地图》是他历经数年实地考察考证,集当时地理书籍之大成的巨作,金正浩的作品还留存有《青邱图》、《大东地志》等。金正浩把《大东舆地图》缩小制成缩尺为90万分之一的《大东舆地全图》并以木版印刷发行。《大东舆地图》于哲宗12年(1861)首次印制,高宗1年(1864)再版印刷。初版和再版的发行份数无法确定,现存传本有5-6部。此大东舆地图是朝鲜时代制作的最准确、最精密、最大的科学实测地图,受到高度评价。
「大東輿地図」は22帖になった韓国の木版地図で、朝鮮時代の最大で最高の科学的地図と評価されている。この地図を製作した金正浩は、70枚余りの木版を彫って、22帖で作って発行した。金正浩は朝鮮末期の実学者であり、地理学者である。貧しい生活の中でもひたすら地図を作って地理誌を出すことだけに最前を尽くしたが、当時は個人が地図を作ることは天意に逆らうことであるという認識のために多くの困難を経験した。「大東輿地図」は彼が数年にかけて現地調査をし、考証を通じて、当時の地理誌を集大成した巨作と言える。金正浩はこれ以外にも「青邱図」『大東地志』などを作った。金正浩は「大東輿地図」を縮小して、一つに作った縮尺90万分の1の「大東輿地全図」を木版で印刷して出版した。「大東輿地図」は哲宗12年(1861)に初めて印刷した後、高宗1年(1864)に再版した。初版と再版の刊行部数は確実でないが、全本は5~6部に達する。この大東輿地図は、朝鮮時代に作られた最も正確で精密な、最大の科学的実測地図として高く評価されてい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