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HISTORY
강화소개
민족의 얼이 숨쉬는 역사와 방어의 섬
소개
탐방
강화는 외침에 대항해서 끝까지 한민족의 자긍심을 지켰던 근거지가 되었던 곳으로 섬이라는 특수성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민족의 자긍심을 키웠던 곳이다.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으로,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크다. 강화 본도와 석모도 등 주민이 살고 있는 섬 11개와 무인도 18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강화본도는 남북 길이 약 28km, 동서 길이 약 16km, 해안선 둘레는 약 12km이며 총면적은 300km 이다. 현재 인구는 약 7만명 가량 정도이다. 강화도는 혈구, 갑비고차 등으로 불렸으며, 1990년대에 강화대교가 놓이면서 육지와 연결되었다.
문수산성 | 갑곶돈 | 초지진
강화도에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가 8건으로, 하정면 오층석탑, 강화동종, 정수사 법당, 전등사 대웅전, 전등사 약사전, 전등사 범종, 하점면 석조여래입상, 백련사 철아미타불좌상이 있는데 이중 백련사 철아미타불좌상은 도난을 당했다. 그 밖에 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15곳이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 유적이 있다.
강화도에는 고인돌 유적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만큼 많은 고인돌 군집이 분포되어 있으며,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단군신화와 관련있는 참성단과 정족산성(삼랑성)이 있으며, 마니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불린다.

또한 강화도는 수도와 가까우면서도 섬이라 외적의 침입을 막기 용이하다는 점때문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방어의 요충지로 주목받았다. 고려시대에는 몽고가 침입했을 당시 수도를 강화로 옮겨 궁궐과 성곽을 짓고 60여년간 항쟁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수로로 수도 한양까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물자의 유통로로 이용되었으며, 또한 바다에서 수로를 통한 침입을 막고자 성곽을 쌓아 방비를 강화하였다. 또한 사고를 지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기도 하였는데, 근대에 서구 열강이 침입해 병인양요, 신미양요의 전장지가 되어 무수한 유물과 문화재를 약탈당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일본과의 개항 조약 또한 강화도에서 맺게 된다. 이처럼 역사와 방어의 섬으로서 오랫동안 그 역할을 해온 강화도는 1997년 12월 강화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 연결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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