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스캔영상
관련 문화재 | 경주 양동 관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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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분류 | 목조건축 |
파일유형 | MP4 |
사업명 | 2014년 문화유산 디지털세트 3차원 DB구축 |
파일용량 | 44.3MB |
제작연도 | 2014 |
공공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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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
보물 제 442호 경주 양동 관가정 - 본 영상은 3차원 광대역 스캐닝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한 영상입니다. - <<경북 지방 고문서 집성>> 에 따르면 원래 양동에는 고려 말 여강 이씨 이광호(李光浩)가 처음 정착하여 손자 사위인 풍덕 류씨 류복하(柳復河)가 처가를 따라 이곳에 왔다, - 이어 조선 세조 때 경주(월성) 손씨 손소(孫昭, 1433-1484)가 류복하의 무남독녀에게 장가들어 처가의 재산을 상속받으면서 이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 그 후 이광호의 5대 종손인 이번(李蕃)이 손소의 외동딸에게 장가들어 양동에 뿌리를 내리면서 이 마을은 손씨와 이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 관가정은 손씨 집안의 둘째아들인 우재 손중돈(1463~1529)이 분가하면서 1480년대 지은 건물이다. -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마을과 형산강은 물론이고 근처의 들판과 산까지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 보통 대문은 행랑채와 연결되지만, 관가정은 특이하게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대문의 왼쪽에 사랑방과 마루가 있다. 마루는 앞면이 트여있는 누마루로 ‘관가정(觀稼亭)’ 현판이 걸려있다. - 사랑대청을 확대하기 위하여 뒤편으로 툇보를 이어 대청 공간을 넓혔으며, 전면 좌측 벽은 판벽에 바라지창을 두고 1/3 넓이의 뒷 칸은 판벽으로 마감하였다. - 아담한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남쪽에는 사랑채, 나머지는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 안채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대청과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로 네 칸을 붙여 두 칸의 상방과 안방을 두었다. - 대청의 대들보는 위쪽으로 휜 자연목을 이용하고 보 위에 작은 포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는 4량의 가구 구조를 보이고 있다. - 사랑대청의 전면과 서측면 툇마루에 계자난간을 돌려 격을 높였다. - 안채의 동북쪽에는 사당을 배치하여 담장으로 양쪽 측면과 뒷면을 둘러막아 주택의 앞쪽을 탁 트이게 하여 낮은 지대의 경관을 바라보게 하였다. - 사당은 따로 둘러막은 담장 속에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전면에 반칸의 퇴(退)를 달아낸 모양으로 된 일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 사당은 누마루와 같이 원기둥을 사용하였으며, 채색된 단청을 통해 건물의 격을 높였음을 알 수 있다. - 안채와 사랑채의 지붕은 하나로 연결되고, 서로 모이는 부분에는 합각을 만든 맞배지붕을 이루고 있다. - 관가정은 조선 중기 남부지방의 주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 제 442호 경주 양동 관가정 문화재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