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천천히 걸어본 적 있으십니까? 소요정의 ‘소요’는 ‘마음 내키는 대로 슬슬 걷는다’는 뜻입니다.
후원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둔 보물 같은 정자의 이름이 소요정이라면 조선 임금의 마음 깊숙한 곳엔 어느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고 천천히 거닐고 싶은 열망이 있었던 것일까요?
정조임금은 이곳에 자주 들러 휴식을 취했는데, 자연에서의 휴식과 사색을 통해 위정자로서의 마음을 쇄신하기 위함이었답니다. 그래서 소요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요정에서 노니는 것은 그저 경치를 보며 쉬고자 함이 아니라 공손하고 신중하게 나랏일을 돌보는 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후세 사람들이여, 앞으로 소요정이 낡아 수리를 한다 해도 이런 뜻을 알고, 원래의 모습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
정조임금은 소요정에서 신하들에게 유상곡수연을 베풀어 풍류를 즐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유상곡수연은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그 잔이 자기 앞으로 오기 전에 시를 짓는 풍류놀이로, 진나라 명필 왕희지가 벗들과 함께 즐겼다는 데서 시작되었죠.
정조 임금은 이를 본떠 규장각 전 현직 관원과 자제, 승지나 사관을 지낸 이들 마흔 한 명을 특별히 불러 옥류천 소요암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었습니다. 이 중 1793년 3월 모임에서 화답한 친필 시문 42수가 전해집니다.
당시 사용하던 붉은 색, 푸른색의 다양한 색지는 금가루와 운모가루로 장식돼 있습니다.
왕실에서 사용하던 최상급 향기로운 종이 위에 떠오른 시상을 적어 내려가던 이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한 신하가 정조 임금께 올린 시를 들으시며, 배처럼 굽이굽이 돌아가던 술잔을 그려보시죠.
임금님 타신 수레 소요정에 행차하니
봄비가 티끌 먼지 씻어 내리네.
그 물에 어른 아이 모여 놀았고
좋은 봄 세월은 돌아오누나.
술잔은 배처럼 굽이굽이 내려오는데
넘치는 태평성대 기상 속에서
술잔 되어 마음껏 놀아보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