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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陜川 海印寺 願堂庵 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 및 腹藏遺物)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수량/면적 불상 3구, 복장유물 8건 23점
지정(등록)일 2020.08.27
소 재 지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길 122 (가야면, 사찰)
시 대 조선 15세기
소유자(소유단체) 대한불교조계종 해인사 원당암 
관리자(관리단체) 해인사성보박물관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보물 제2072호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陜川 海印寺 願堂庵 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은 해인사 경내 부속 암자인 원당암(願堂庵)의 보광전(普光殿)에 봉안된 삼존불상으로, 이곳에서 발견된 8건 23점의 복장유물 역시 지정대상에 포함된다.

해인사 원당암과 이곳의 불상 조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인물은 학조대사(學祖大師, 15세기)로서, 그는 해인사에 주석(主席)하면서 왕실의 후원을 받아 중창불사(重創佛事)와 대장경(大藏經) 인출, 해인사 법보전 및 대적광전 비로자나불 조성을 주도하였으며, 1495년 원당암 중창에도 일정한 역할을 했다.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설법인(說法印)의 수인(手印)을 한 아미타여래상과 화불(化佛)을 새긴 보관(寶冠)을 쓴 관음보살, 민머리의 지장보살로 구성된 불상으로, 아미타삼존 도상을 정확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이러한 삼존상 형식은 고려 후기에 새롭게 등장한 도상(圖像)으로 조선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다만, 고려 또는 조선시대 작품으로 삼존상을 주불전에 봉안한 사례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금산 신안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상’ 등 남아있는 사례가 극히 드물어 희소성이 크다.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불상의 형식과 복장발원문, 1490년 전후 왕실의 지원에 따른 해인사 중창(重創), 이후 1495년 원당암 중창이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을 감안할 때, 조선 15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복장유물을 통해 해인사 법보전과 대적광전 목조비로자나불좌상 조성을 후원한 왕실인물들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확인된다.

불ㆍ보살상의 얼굴은 통통한 둥근 형상에 조밀하고 섬세한 이목구비, 위엄있고 온화한 표정 등 수법이 서로 비슷해 동일한 작가의 솜씨로 보인다. 특히 삼존상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앙련(仰蓮)과 복련(覆蓮)이 맞붙은 연화대좌는 명나라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어서 당시 중국불교와 교류를 엿 볼 수 있는 요소이다. 나풀거리듯 드리운 목깃 주름과 신체의 유기적인 흐름을 따라 사실적으로 조각된 천의(天衣), 과장되지 않은 양감과 부피감 등 뛰어난 조형미는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82호, 1458년),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 1466년) 등 15세기 중·후반 왕실발원 불상들과 양식적 연관성을 보여준다.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고려 후기부터 본격화된 아미타여래와 관음, 지장보살로 구성된 아미타삼존 도상을 보여주며, 조선 초 15세기 불상의 양식적 특징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어 당시 불교조각사 연구에 귀중한 사례가 되는 작품이다. 또한 제작 당시부터 오늘날까지 원래의 봉안 장소를 벗어나지 않고 제작 당시 모습 그대로 신앙의 대상으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 복장유물을 통해 제작배경과 참여자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삼존상과 복장유물을 함께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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