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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 (慶州 南山 長倉谷 石造彌勒如來三尊像)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불상
수량/면적 3구
지정(등록)일 2020.08.27
소 재 지 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 186 (인왕동, 국립경주박물관)
시 대 신라 7세기
소유자(소유단체) 국립경주박물관 
관리자(관리단체) 국립경주박물관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보물 제2071호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慶州 南山 長倉谷 石造彌勒如來三尊像)’은 경주 남산 계곡 중 한 지류인 ‘장창곡(長倉谷)’의 정상부근 석실(石室)에 있던 석조불상이다. 본존상은 1924년 10월 남산 장창곡에서 발견되었다. 이전에 먼저 옮겨져 경주 내남면 월남리 민가에 보관되어 온 두 협시보살상은 일제강점기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되어 오다가 본존상과 함께 완전한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이 삼존상은 삼국 시대 미륵신앙과 신앙행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이는『삼국유사(三國遺事)』의「탑상(塔像)」편 ‘생의사석미륵(生義寺石彌勒)’ 조(條)의 644년(선덕여왕 13) 생의(生義) 스님이 경주 남산 골짜기에서 미륵상을 발견하여 삼화령(三花嶺)에 봉안하였다는 기록과, 같은 책「기이(紀異)」편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景德王 忠談師 表訓大德)’에 기록된 삼화령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승려 충담사(忠談師)가 이 불상에 차[茶]를 공양했다고 하는 ‘삼화령 미륵세존 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또한 이 삼존상은 어린아이처럼 귀엽고 천진난만한 용모로 인해 ‘삼화령 애기부처’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원래 봉안 장소라고 알려진 삼화령 또는 생의사의 근거가 될 만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불상이 발견된 계곡 명칭을 붙여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미륵세존의 설화와 ‘삼화(三花)’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신라시대 미륵불은 화랑(花郞)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신앙되어 왔다. 따라서 장창곡 미륵여래삼존상은 망자(亡者)가 화랑으로 환생하기를 염원하였고 어린 화랑을 미래불인 미륵의 화신으로 여긴 신라인들의 정신세계와 제작배경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보물 제2071호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의좌상(倚坐像, 의자에 앉은 자세)을 취한 본존 미륵불과 입상의 좌ㆍ우 협시보살로 총3구로 구성되었다. 일반적으로 의좌상 형식의 불상은 중국 남북조 시대(5∼6세기) 이후 크게 유행하였고 미륵불을 상징한 예가 많다. 이 불상의 경우 우리나라 의좌상 불상 중 시기가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서, 원만하고 자비로운 얼굴에 오른손은 손가락을 구부린 채 들고 있고 왼손은 주먹을 쥔 시무외ㆍ여원인(施無畏ㆍ與願印)의 변형 수인(手印)을 하고 있다. 두 협시보살은 1미터 남짓의 아담한 체구에 머리에는 삼화(三花) 보관을 쓰고 각각 지물(持物)을 들고 있는 서 있다. 뺨이 통통한 아기와 같이 입가에 잔잔한 미소 짓고 있으며, 장식과 몸에 걸친 천의(天衣) 자락 등이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이렇듯 어린아이의 몸 같은 4등신 정도의 단구형(短軀形) 신체 비례를 보이는 불·보살상은 중국 6∼7세기 북주(北周)시대부터 수대(隋代)에 걸쳐 유행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7세기에 신라에서 주로 조성되었으므로 양식적 영향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보물 제2071호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경주 남산이라는 원 위치가 명확하게 확인된 점,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의좌형 미륵삼존불이자 신라인들의 신앙생활이 반영된 대표작이라는 점, 7세기 신라 전성기의 수준 높은 조각양식을 보여준다는 사실에 비추어 한국조각사에 중요한 학술적ㆍ예술적 위상을 지닌 작품이므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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