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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7호

효암서원 (孝岩書院)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1984.05.17
소 재 지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덕은로470번길 18-8 (산노리)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유림 
시도지정 및 문화재자료는 각 지자체 담당부서에서 문화재정보를 입력·수정 관리하고 있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을 경우, 아래 지자체 담당부서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 상 세 문 의 : 충청남도 논산시 문화예술과 041-746-5411~5

강응정을 중심으로 양응춘·김문기·김성휘·김필해·남준 등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서원이다.

강응정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성균관 유생시절 향약을 만들었으며 효행이 지극하여 효자 정문을 세우기도 했다.

이 서원은 본래 강응정을 모시기 위해 두월리에 세운 것으로 원래 이름은 갈산사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숙종 39년(1713) 지금 있는 자리에 다시 지어 효암서원이라 하였다. 서익·양응춘·김문기·김성휘·김필해·남준을 추가로 배향하여 오다가, 고종 4년(1867) 서익은 행림서원으로 옮겼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25년 사우를 복원하였다.

사우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외삼문 앞에 강응정 선생의 정려가 있으며, 성종이 직접 쓴 사액현판을 보존하고 있다.

강응정을 중심으로 양응춘·김문기·김성휘·김필해·남준 등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서원이다.

강응정은 조선 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성균관 유생시절 향약을 만들었으며 효행이 지극하여 효자 정문을 세우기도 했다.

이 서원은 본래 강응정을 모시기 위해 두월리에 세운 것으로 원래 이름은 갈산사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고, 숙종 39년(1713) 지금 있는 자리에 다시 지어 효암서원이라 하였다. 서익·양응춘·김문기·김성휘·김필해·남준을 추가로 배향하여 오다가, 고종 4년(1867) 서익은 행림서원으로 옮겼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25년 사우를 복원하였다.

사우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외삼문 앞에 강응정 선생의 정려가 있으며, 성종이 직접 쓴 사액현판을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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