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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속문화재 제290호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 (大田 小大軒·浩然齋 古宅)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수량/면적 건물 4동(460.4㎡), 토지 2,813㎡(2필지)
지정(등록)일 2016.08.26
소 재 지 대전광역시 대덕구 동춘당로 70 (송촌동, 대전 소대헌 호연재 고택)
소유자(소유단체) 문화재청 
관리자(관리단체) 문화유산국민신탁 
문화재 담당부서 : 근대문화재과- 상세문의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宋炳夏, 1646~1697)가 1674년 분가하여 건립한 고택으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宋堯和, 1682~1764)가 1714년 옮겨 지었다.

소대헌 송요화의 부인 안동 김씨(1681~1722)는 조선후기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호가 호연재(浩然齋)로 경서와 사서에도 능통하였다 하며 한시 134수를 남겼다.

고택은 조선 중기 대전지역의 살림집을 이해할 수 있는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를 동시에 갖추고 대청을 한 쪽에 두는 방식이나 안채의 마루방과 툇마루 등이 전면 뿐 아니라 사방에 다양한 크기로 배치하는 양식은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큰집 격인 동춘당 종택과 함께 한 집안의 가계 계승, 충청지역의 명문가 후손 집안으로서의 면모를 찾을 수 있으며, 비교적 조선 중기의 원형이 잘 남아 있고, 대전지역에서는 살림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적 특색을 알 수 있는 희소성이 있는 등 민속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The Sodaeheon and Hoyeonjae Historic House was built by Song Byeong-ha (1646-1697) in 1674 after he moved out of his parents’ house, and reconstructed by his son, Song Yo-hwa (pen-name: Sodaeheon, 1682-1764), in 1714. The wife of Song Yo-hwa, Lady Kim (pen-name: Hoyeonjae, 1681-1722), was a poet and admired lady of letters in the seventeenth and eighteenth centuries in Korea, and left behind 134 Sino-Korean poems. This old house is considered a valuable material for understanding private houses in the Daejeon region during the mid-Joseon period. It has two sarangchae (men’s quarters), large and small, a feature rarely seen in the region, and a large sarangchae built with wings. Its regional characteristics include the arrangement of the living spaces, i.e. the daecheong (main hall) is situated on one side, while the wooden-floored room of the anchae and the toenmaru (the narrow wooden porch running along the outside of the building) are arranged in various sizes on all sides not only in front.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宋炳夏, 1646~1697)가 1674년 분가하여 건립한 고택으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宋堯和, 1682~1764)가 1714년 옮겨 지었다.

소대헌 송요화의 부인 안동 김씨(1681~1722)는 조선후기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호가 호연재(浩然齋)로 경서와 사서에도 능통하였다 하며 한시 134수를 남겼다.

고택은 조선 중기 대전지역의 살림집을 이해할 수 있는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를 동시에 갖추고 대청을 한 쪽에 두는 방식이나 안채의 마루방과 툇마루 등이 전면 뿐 아니라 사방에 다양한 크기로 배치하는 양식은 지역적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큰집 격인 동춘당 종택과 함께 한 집안의 가계 계승, 충청지역의 명문가 후손 집안으로서의 면모를 찾을 수 있으며, 비교적 조선 중기의 원형이 잘 남아 있고, 대전지역에서는 살림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적 특색을 알 수 있는 희소성이 있는 등 민속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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