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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454호

김해 양동리 고분군 (金海 良洞里 古墳群)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수량/면적 51,826㎡
지정(등록)일 2004.07.24
소 재 지 경남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산3번지 등
시 대 가야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김해시 
문화재 담당부서 : 보존정책과- 상세문의

김해 양동리 고분군은 기원전 2세기대로부터 기원 5세기대에 걸쳐 형성된 고분군으로서, 발굴조사 결과 다양한 묘제와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 국가 형성기로부터 발전기의 역사적 사실을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유적은 일찍부터 김해지역 중심고분유적의 하나로 주목받은 곳으로서 1984년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1990∼1996년간 동의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4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 548기의 유구와 토기와 청동기, 철기 등 5,100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확인된 유구는 묘제의 변천과정과 연대 규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출토된 각종 유물은 시기별 가야문화의 실상과 변화상을 한 눈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종래의 연구에서 부족했던 많은 자료를 보완하여 국제성을 띤 가야문화의 세련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발굴성과를 통하여 가야사회의 문화와 국가·사회적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구야국(狗耶國) 또는 본가야(本伽倻)가 활발한 해상활동을 통하여 번성한 해양왕국(海洋王國)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2세기 후반에서 4세기까지가 가야철(伽倻鐵)의 전성기로서 해상활동도 가장 활발하여 외래문물도 해로를 통해 직접 유입되었던 가야시대의 번성기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철생산이 가야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철시장의 상실로 인한 가치 하락이 가야쇠퇴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새롭게 부상한 신라나 백제의 압박으로 점차 쇠망하였다는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이 김해양동리고분군은 그 발굴성과를 통해 각 시기별 가야문물의 진수를 보여줄 뿐 아니라 낙동강 하류지역 가야사회의 성장과 그 국가적 성격을 밝히는 귀중한 유적이라 할 것이다.

The ancient tombs in Yangdong-ri, Gimhae were formed from the 2nd century BC through the 5th century AD. Excavations have revealed various tomb types and many relics, making this an important site showing historical facts about the Gaya Kingdom from its formative years and onward through its growth and development. Known early on as one of the major groups of tombs in the Gimhae area, this site was first excavated in 1984 by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and subsequently for four more times from 1990 to 1996 by Dong-Eui University Museum. The excavations revealed 548 tombs including wooden coffin tombs, wooden chamber tombs, stone-lined tombs, and jar coffin tombs as well as 5,100 relics including earthenware, bronze ware, and iron ware. The remains found provide important information on changes in tomb types and related dates, with the excavated relics not only revealing what the Gaya Kingdom was like at different stages but also supplementing the deficiencies of existing research. They are also important since they show the sophisticated international aspect of the Gaya culture. Thanks to the excavation findings, the nature of Gaya society and culture can be understood more clearly. They show that Guyaguk (or Bongaya) flourished thanks to its maritime activities, and that its iron culture had its heyday during the 2nd ~ 4th centuries when Gaya introduced foreign culture via the sea, since its maritime activities were at its peak. The relics indicate that iron played an important role in Gaya’s development, and that the loss of the iron market and drop in the value of iron were also a direct factor in Gaya’s demise. They also show that Gaya gradually declined under the force of the newly rising Silla and Baekje dynasties. Thus, the ancient tombs in Yangdong-ri, Gimhae and the remains and relics found at the site are very important since they suggest the real aspect of Gaya civilization at different stages of development, growth of Gaya society in the downstream region of Nakdonggang River, and nature of Gaya as a nation.

金海良洞里古坟群形成于公元前二世纪至公元五世纪,挖掘调查结果发现了各种墓制与大批遗物,通过遗物可了解到伽倻国形成至发展时期的历史事实,是非常重要的历史资料。该遗址很早以前就被认为是金海地区的中心古坟遗址,备受瞩目。自1984年文化财研究所首次挖掘以来,1990∼1996年期间东义大学博物馆分四次进行了挖掘调查,发现了木棺墓、木椁墓、石椁墓、瓮棺墓等548座以及陶器、青铜器、铁器等5,100多件遗物。金海良洞里古坟群的挖掘成果不仅展示了不同时期伽倻文物的精髓,还是为揭开洛东江下游地区伽倻社会的发展与国家性质提供了宝贵资料的遗址。

金海良洞里古墳群は紀元前2世紀頃から西暦5世紀頃にかけて形成した古墳群で、発掘調査の結果、様々な墓の形と数多くの遺物が出土され、伽倻の国家形成期から発展期に移る歴史的事実が一目で見られる重要な資料である。この遺跡は昔から金海地域の中心的な古墳遺跡の一つとして注目されてきた所である。1984年に文化財研究所によって初めて発掘調査が行われて以来、1990年から1996年の間には東義大学博物館によって4回にわたる発掘調査が行われ、木棺墓・木槨墓・石槨墓・甕棺墓など548基の遺構と土器・青銅器・鉄器など5,100余点に至る遺物が出土された。金海良洞里古墳群はその発掘成果を通して、各時期における伽倻文化の真髄を示しているだけでなく、洛東江下流地域の伽倻社会の成長と国としての性格が明らかにできる貴重な遺跡であるといえよう。

김해 양동리 고분군은 기원전 2세기대로부터 기원 5세기대에 걸쳐 형성된 고분군으로서, 발굴조사 결과 다양한 묘제와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 국가 형성기로부터 발전기의 역사적 사실을 한 눈에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유적은 일찍부터 김해지역 중심고분유적의 하나로 주목받은 곳으로서 1984년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처음으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이래 1990∼1996년간 동의대학교 박물관에 의하여 4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목관묘, 목곽묘, 석곽묘, 옹관묘 등 548기의 유구와 토기와 청동기, 철기 등 5,100여점에 이르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확인된 유구는 묘제의 변천과정과 연대 규명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이며, 출토된 각종 유물은 시기별 가야문화의 실상과 변화상을 한 눈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종래의 연구에서 부족했던 많은 자료를 보완하여 국제성을 띤 가야문화의 세련된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발굴성과를 통하여 가야사회의 문화와 국가·사회적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어 구야국(狗耶國) 또는 본가야(本伽倻)가 활발한 해상활동을 통하여 번성한 해양왕국(海洋王國)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2세기 후반에서 4세기까지가 가야철(伽倻鐵)의 전성기로서 해상활동도 가장 활발하여 외래문물도 해로를 통해 직접 유입되었던 가야시대의 번성기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철생산이 가야발전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철시장의 상실로 인한 가치 하락이 가야쇠퇴의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으며, 새롭게 부상한 신라나 백제의 압박으로 점차 쇠망하였다는 설명을 가능하게 한다.

이와 같이 김해양동리고분군은 그 발굴성과를 통해 각 시기별 가야문물의 진수를 보여줄 뿐 아니라 낙동강 하류지역 가야사회의 성장과 그 국가적 성격을 밝히는 귀중한 유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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