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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475호

서산 부장리 고분군 (瑞山 富長里 古墳群)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수량/면적 14,108㎡
지정(등록)일 2006.11.06
소 재 지 충남 서산시 음암면 음암로 499 (부장리)
시 대 백제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서산시 
문화재 담당부서 : 보존정책과- 상세문의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2004년 ~ 2005년 충남역사문화원에서 임대아파트 조성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동기시대 유구는 총 37기로 그 가운데 주거지가 31기, 수혈유구가 6기 조사되었다. 백제시대 유구는 총 74기로 주거지가 40기, 분구묘 13기, 수혈유구 18기, 석곽묘 3기가 조사되었다. 분구묘는 6호, 8호, 9호 분구묘의 주구가 일부 중복된 것 이외에 묘역을 서로 침범하지 않고 13기가 축조되어 있다. 분구묘는 한 변이 20~40m정도인 방형의 주구가 돌려져 있다. 매장시설은 모두 토광묘로 목곽을 사용한 것과 사용하지 않은 목관묘 등이 혼재되어 있으며, 하나의 분구 내부에서 매장주체부가 적게는 하나에서 많게는 9기의 매장시설이 조사되었다. 내부출토유물로는 토기류와 철기류, 장신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5호 분구묘에서는 금동관모, 철제초두, 금동이식, 곡옥, 각종 구슬류를 비롯한 환두대도, 반부철모, 철겸, 철부, 각종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유구로는 주거지와 토광묘 수혈유구가 있으며, 총 104기가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주거지는 7기로 모두 한쪽 벽면에 부뚜막과 구들시설이 있는 평면형태 부정원형의 것이었다.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중기에 이르는 취락이 조사되었으며, 일명 흔암리유형의 전기취락과 송국리유형의 중기 주거지가 있다. 이는 인근에서 최근에 조사된 서산 기지리유적을 비롯하여 기존의 휴암리유적 등과 비교연구 함으로써 서산지역 청동기에서 전기 및 중기의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정상부의 1호분은 잔존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역사교육자료로서의 활용도가 높다고 할 수 있어 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을 중심으로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The Chungnam Institute of History and Culture found some 260 burial sites including 13 tumuli through the excavation of an apartment construction site in Bujang-ri, Seosan in 2004-2005. The burial sites yielded luxurious artifacts such as gilt-bronze crown, sword with ring pommel, and three-legged cauldron with a handle. The tombs and relics are important materials for studying the status and culture of the Seosan area along the west coast during the Baekje Period (18 BC- AD 660). The remains of Tomb No. 1 on the highest level are in very good condition and are useful for history education. The surveyed area was designated as a historic site to protect the remains from further damage and to enable their use for educational purposes.

2004年~2005年忠南历史文化院对修建租赁公寓的地皮实施挖掘调查时发现了在瑞山富长里古坟群内有青铜时代的37座遗构,其中31座居住址、6座竖穴遗构;有百济时代的74座遗构,其中40座居住址、13座坟丘墓、18座竖穴遗构、3座石椁墓。除6号、8号、9号坟丘墓的周沟部分重叠外,其他的墓域互不侵犯,共有13座。坟丘墓围有边长20~40米长的方形周沟。埋葬设施均为土圹墓,有些使用木棺,有些使用木椁,每座坟丘内设埋葬一至九人的设施。内部出土的遗物有陶器类、铁器类、饰物类等,尤其是五号坟丘墓出土了鎏金铜制冠帽、铁制鐎斗、鎏金铜耳饰、曲玉、各种珠类、环首大刀、铁矛铁镰、铁斧、各种陶器类。朝鲜时代遗构有住居址与土圹墓竖穴遗构,共发现了104座,其中居住址为7座,都是一面壁上带有灶与暖炕设施的平面不规则圆形。调查发现了青铜时代前期至中期的聚落,有被称为欣岩里类型的前期聚落与松菊里类型的中期居住址。把这一带古坟与最近在附近调查到的瑞山机池里遗址、之前的休岩里遗址等进行比较研究,将为了解瑞山地区青铜器至前期以及中期文化提供重要资料。尤其是顶部一号墓的残存状态尤为良好,可以作为很好的历史教育资料,调查区域已被指定为史迹。

瑞山副長里古墳群は2004年~2005年に忠南歴史文化院で公共住宅造成敷地に対する発掘調査を行った結果、青銅器時代の遺構は計37基で、そのうち住居の跡は31基・竪穴遺構は6基が確認された。百済時代の遺構は計74基で、住居の跡は40基・墳丘墓13基・竪穴遺構18基・石槨墓3基が確認された。墳丘墓は6号・8号・9号の周溝の一部は重なっているが、その他は墓域が重ならないようにして13基が築造されている。墳丘墓は1辺が20~40mほどの方形の周溝が巡らされている。埋蔵形式は全て土壙墓で、木槨を使ったものと使っていない木棺墓などが混在し、一つの墳丘の中に埋蔵主体部が少ないのは1基から多いのは9基の埋蔵施設が発見された。内部から出土された遺物としては土器類と鉄器類、装身具類などが出土された。特に、5号の墳丘墓からは金銅冠帽・鉄製鐎斗・金銅耳飾り・曲玉・各種玉類をはじめ、環頭大刀・盤附鉄鉾・鉄鎌・鉄斧などの各種土器類が出土された。朝鮮時代の遺構としては住居の跡と土壙墓竪穴遺構があり、計104基が確認された。このうち、住居の跡は7基で、全てが片方の壁面にかまどとオンドル施設がある平面形態の円形に近いものである。青銅器時代前期から中期に至る聚落が確認され、それは欣岩里型の前期聚落と松菊里型の中期住居の跡であることが分かった。これは近くから最近発見された瑞山機池里遺跡をはじめ、既存の休岩里遺跡などとの比較研究を通じて、瑞山地域の青銅器時代前期及び中期の文化が究明できる重要な資料になると考えられる。特に、頂上部の1号墳は保存状態が極めて良好であるため、歴史教育の資料として活用度が高いと考えられ、調査が行われた地域を中心に史跡に指定された。

서산 부장리 고분군은 2004년 ~ 2005년 충남역사문화원에서 임대아파트 조성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동기시대 유구는 총 37기로 그 가운데 주거지가 31기, 수혈유구가 6기 조사되었다. 백제시대 유구는 총 74기로 주거지가 40기, 분구묘 13기, 수혈유구 18기, 석곽묘 3기가 조사되었다. 분구묘는 6호, 8호, 9호 분구묘의 주구가 일부 중복된 것 이외에 묘역을 서로 침범하지 않고 13기가 축조되어 있다. 분구묘는 한 변이 20~40m정도인 방형의 주구가 돌려져 있다. 매장시설은 모두 토광묘로 목곽을 사용한 것과 사용하지 않은 목관묘 등이 혼재되어 있으며, 하나의 분구 내부에서 매장주체부가 적게는 하나에서 많게는 9기의 매장시설이 조사되었다. 내부출토유물로는 토기류와 철기류, 장신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5호 분구묘에서는 금동관모, 철제초두, 금동이식, 곡옥, 각종 구슬류를 비롯한 환두대도, 반부철모, 철겸, 철부, 각종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유구로는 주거지와 토광묘 수혈유구가 있으며, 총 104기가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주거지는 7기로 모두 한쪽 벽면에 부뚜막과 구들시설이 있는 평면형태 부정원형의 것이었다.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중기에 이르는 취락이 조사되었으며, 일명 흔암리유형의 전기취락과 송국리유형의 중기 주거지가 있다. 이는 인근에서 최근에 조사된 서산 기지리유적을 비롯하여 기존의 휴암리유적 등과 비교연구 함으로써 서산지역 청동기에서 전기 및 중기의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정상부의 1호분은 잔존상태가 매우 양호하여 역사교육자료로서의 활용도가 높다고 할 수 있어 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을 중심으로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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