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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3호

공주 송산리 고분군 (公州 宋山里 古墳群)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수량/면적 308,800㎡
지정(등록)일 1963.01.21
소 재 지 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5-1번지
시 대 백제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공주시 
문화재 담당부서 : 고도보존육성과- 상세문의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웅진 백제시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이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이 일대의 고분들은 모두 7기가 전해지는데, 송산을 주산으로 뻗은 구릉 중턱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 ·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1∼6호분은 일제시대에 조사되어 고분의 구조와 형식이 밝혀졌고, 무령왕릉은 1971년 5 ·6호분의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고분들은 모두가 표고 약120m 정도되는 송산(宋山)을 북쪽의 주산(主山)으로 한 중턱 남쪽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데, 1∼5호분은 모두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무덤 입구에서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널방(현실)에 이르는 널길이 널방 동쪽벽에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4호분은 바닥에 냇자갈을 깔아 널받침(관대)을 만들었는데, 5호분은 벽돌을 이용하였다. 이처럼 같은 양식의 무덤이면서 구조와 규모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시기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5호분은 원형으로 남아 있으나, 1∼4호분은 조사되기 전에 이미 도굴되었다. 이외에 벽돌무덤(전축분)으로 송산리벽화고분이라고도 불리는 6호분과 무령왕릉이 있다.

6호분은 활모양 천장으로 된 이중 널길과 긴 네모형의 널방으로 되어 있는데 오수전(五銖錢)이 새겨진 벽돌로 정연하게 쌓았다. 널방 벽에는 7개의 등자리와 사신도 · 일월도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무령왕릉도 6호분과 같이 연꽃무늬 벽돌로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반복하여 벽을 쌓았다. 벽에는 5개의 등자리가 있고, 무덤주인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석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현재 남아있는 백제의 벽돌무덤으로, 모두 터널형 널방 앞에 짧은 터널형 널길을 가지고 있으며 긴 배수로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벽돌무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벽화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령왕릉의 경우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있어 백제사회의 사회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절대자료로 평가된다.

Located in Geumseong-dong, Gongju, these are the tombs of the Baekje Dynasty. The seven tombs located on the southern slope of Songsan Mountain are of Baekje kings including King Muryeong. Among the seven royal tombs, three were excavated west of a valley (Nos. 5-6, tomb of King Muryeong), and four, in the northeast (Nos. 1-4). These six were excavat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while the royal tomb of King Muryeong was found in 1971 during the repair work for Nos. 5-6. Tombs numbered 1-5 are of the stone chamber tomb with tunnel entrance type. The walls of the chamber are plastered, and the coffin base is made by laying pebbles (Nos. 1-4) or bricks (No. 5). When the excavation work started, Tombs 1-4 had already been burgled, but Tomb 5 was intact. Tomb 6, often called Mural Tomb in Songsan-ri, is of the brick chamber type. It has a rectangular chamber whose walls are decorated with mural paintings of stars, sun, moon, and gods of death. Another brick chamber tomb, which is that of King Muryeong, is decorated with lotus patterns and painting of the stars. There, archaeologists found many relics including a stone monument with inscriptions on the dead person. Influenced by China (tomb type) and Goguryeo (mural painting), the tomb is regarded as a precious asset for the study of Baekje society.

公州宋山里古坟群位于公州市锦城洞,古坟群内有大量熊津百济时代的王陵。包括武宁王陵在内这一带共有七座古坟,位于以松山为主山的丘陵半腰之南侧斜坡上。溪谷西侧有武宁王陵与5·6号坟,东北侧有1∼4号坟,1∼6号坟的结构与形式是在日帝时代调查发现的,武宁王陵是1971年进行5·6号坟的维修施工时发现的。6号坟与武宁王陵是现存的百济砖筑坟,隧道式墓室前都带有短隧道式墓道与较长的排水设施。推测这些砖筑坟受到了中国的影响,壁画则是受到了高句丽的影响,尤其是可以获知武宁王陵的确切年代,是研究百济时期社会·文化的极其重要的资料。

公州宋山里古墳群は、公州市錦城洞にある熊津百済時代の王たちの墓が集まっている所である。武寧王陵をはじめとしたこの一帯の古墳は全部で7基残っており、宋山を主山として伸びた丘陵中腹の南の傾斜面に位置している。谷を間に置いて西側には武寧王陵と5・6号墳があり、東北側には1~4号墳がある。1~6号墳は日帝強占期に調査され、古墳の構造と形式が明らかになり、武寧王陵は1971年5・6号墳の補修工事の時に発見された。6号墳と武寧王陵は、現在残されている百済の煙瓦墓の一つで、全部トンネル型の玄室の前に短いトンネル型の羨道を持ち、長い排水路も備えている。このような形式の煙瓦墓は中国の影響を受けたもので、壁画は高句麗の影響を受けたものと考えられる。特に、武寧王陵の場合、確かな年代が分かるため、百済時代の社会・文化相を研究するにおいて絶対的な資料として評価されている。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웅진 백제시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이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이 일대의 고분들은 모두 7기가 전해지는데, 송산을 주산으로 뻗은 구릉 중턱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 ·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1∼6호분은 일제시대에 조사되어 고분의 구조와 형식이 밝혀졌고, 무령왕릉은 1971년 5 ·6호분의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고분들은 모두가 표고 약120m 정도되는 송산(宋山)을 북쪽의 주산(主山)으로 한 중턱 남쪽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데, 1∼5호분은 모두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무덤 입구에서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널방(현실)에 이르는 널길이 널방 동쪽벽에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4호분은 바닥에 냇자갈을 깔아 널받침(관대)을 만들었는데, 5호분은 벽돌을 이용하였다. 이처럼 같은 양식의 무덤이면서 구조와 규모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시기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5호분은 원형으로 남아 있으나, 1∼4호분은 조사되기 전에 이미 도굴되었다. 이외에 벽돌무덤(전축분)으로 송산리벽화고분이라고도 불리는 6호분과 무령왕릉이 있다.

6호분은 활모양 천장으로 된 이중 널길과 긴 네모형의 널방으로 되어 있는데 오수전(五銖錢)이 새겨진 벽돌로 정연하게 쌓았다. 널방 벽에는 7개의 등자리와 사신도 · 일월도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무령왕릉도 6호분과 같이 연꽃무늬 벽돌로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반복하여 벽을 쌓았다. 벽에는 5개의 등자리가 있고, 무덤주인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석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현재 남아있는 백제의 벽돌무덤으로, 모두 터널형 널방 앞에 짧은 터널형 널길을 가지고 있으며 긴 배수로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벽돌무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벽화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령왕릉의 경우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있어 백제사회의 사회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절대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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