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홈으로첫번째 분류

  • 인쇄

보물 제1371호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永同 般若寺 三層石塔)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수량/면적 1기
지정(등록)일 2003.03.14
소 재 지 충북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로 652 (우매리)
시 대 고려시대
소유자(소유단체) 반야사 
관리자(관리단체) 반야사주지 
문화재 담당부서 : 유형문화재과- 상세문의

이 탑은 반야사의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라 한다.

지대석 위에 1층의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3층의 탑신(몸돌)을 올린 석탑으로 높이는 335cm이다. 토단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지대석으로부터 마지막 층까지 대체로 완전한 편이다.

지대석은 모두 6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다. 지대석 윗면의 네 모서리에는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으며, 중심부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기단면석이 꼽히도록 하였다.

기단부는 모두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었다. 갑석의 윗면은 1매의 판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중앙에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초층탑신을 꼽도록 조성했다. 갑석의 네 모퉁이에도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양 우주를 새겼는데, 남·북쪽 면석은 새로 끼워 넣은 것이다. 2·3층 탑신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2층 탑신에 모각된 우주에서는 엔타시스 수법을 볼 수 있다. 3층 탑신은 현상으로 보아 새로 끼운 것으로 판단된다.

옥개석은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층 옥개석의 낙수면은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한 편이며, 옥개석 받침은 1층 5단, 2·3층에서는 4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는 비교적 두껍게 조성되었는데, 직선화되는 보편적인 수법과는 달리 둥글게 표현되어 전각의 반전은 예리한 편이다. 옥개석의 윗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고 있다. 정상에는 찰주공이 관통된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초층탑신의 결구수법은 신라 석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을 꼽도록 하면에 홈을 판 점은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비록 일부 새로운 부재가 보충되었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This pagoda (height: 335cm) reportedly used to be in Seokcheon Valley north of Banyasa Temple but was relocat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950. The three-tiered body was set up on the single-tier base on the foundation, which is embedded in soil. Overall, the structure has been preserved well. The foundation consists of six flat stones and features a 3cm-deep square hole to accommodate the base of the body. The base of the body is composed of four flat stones, each of which displays the inscription of column-shaped figures on both corners and at the center. The top of the base is made of a stone with a 3cm-deep square hole to accommodate the first tier of the body. The first tier of the body is composed of four flat stones, with the corner of each one inscribed with the shape of a column. The second and third tiers of the body are each composed of a stone. The corner columns for the second tier of the body display an entasis technique. Each roof stone consists of a stone and has a short, sharp slope. As for the bottoms of roof stones, the bottom for the first-tier roof stone is five-tiered, whereas that for the second- and third-tier roof stones is four-tiered. Roof stone edges are made thick. Unlike the trend of adopting a straight line for roof stone edges of that time, this one has round lines. The top of each roof stone provides a square bottom for the upper-tier body. The bottom support and bokbal (overturned bowl) are left at the stupa finial. The pagoda is presumed to have been set up in the early Goryeo Period (918-1392) based on its overall style. The technique used to combine the first-tier body with the upper body seems to inherit the tradition of stone pagodas of the Silla Period (57 BC- 935 AD). The hole made on the top of the base to accommodate the first tier of the body appears to follow the style of stone pagodas of the Baekje Period (18 BC-660 AD) in Chungcheong-do and Jeolla-do. The pagoda displays the characteristics of stone pagodas built in the Goryeo Period, following the styles of those of the Baekje and Silla Periods.

此塔矗立于般若寺内,据说原本位于般若寺北侧的石川溪谷的“塔野”内,1950年迁至如今的位置。从石塔整体样式来看,推测是高丽时代前期建造的石塔。首层塔身的构造手法继承了新罗石塔的传统,下面凿槽以便卡住基坛面石和首层塔身,由此可知是建于忠清道和全罗道一带的百济系石塔的样式。永同般若寺三层石塔局部补充了新材料,却是融合了百济系和新罗系石塔的样式、充分展现了高丽时代石塔特点的宝贵资料。

この塔は般若寺の境内に建立されているが、元々般若寺の北側にある石川渓谷「タップボル」という所にあったものを、1950年に現在の場所に移転したという。この石塔は、全体的な様式から、高麗時代前期に健立されたと考えられる。なお、初重塔身の結構手法は、新羅石塔の伝統をそのまま継承しており、基壇面石と初重塔身を差し込むように溝を掘った点は、忠清道と全羅道一帯に健立された百済系石塔の様式と言える。氷同般若寺三重石塔は一部が新しい部材で補充されているが、様式的な面において百済系と新羅系石塔の様式を折衷して健立した高麗時代の石塔の特徴をよく表しており、貴重な資料であると評価される。

이 탑은 반야사의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라 한다.

지대석 위에 1층의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3층의 탑신(몸돌)을 올린 석탑으로 높이는 335cm이다. 토단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지대석으로부터 마지막 층까지 대체로 완전한 편이다.

지대석은 모두 6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었다. 지대석 윗면의 네 모서리에는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으며, 중심부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기단면석이 꼽히도록 하였다.

기단부는 모두 4매의 석재로 구성되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가 모각되었다. 갑석의 윗면은 1매의 판석으로 조성하였는데, 중앙에는 깊이 3cm정도의 홈을 파 초층탑신을 꼽도록 조성했다. 갑석의 네 모퉁이에도 합각선이 돌출되어 있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면에는 양 우주를 새겼는데, 남·북쪽 면석은 새로 끼워 넣은 것이다. 2·3층 탑신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었는데, 2층 탑신에 모각된 우주에서는 엔타시스 수법을 볼 수 있다. 3층 탑신은 현상으로 보아 새로 끼운 것으로 판단된다.

옥개석은 1층에서 3층까지 모두 1석으로 조성되어 있다. 각층 옥개석의 낙수면은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한 편이며, 옥개석 받침은 1층 5단, 2·3층에서는 4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는 비교적 두껍게 조성되었는데, 직선화되는 보편적인 수법과는 달리 둥글게 표현되어 전각의 반전은 예리한 편이다. 옥개석의 윗면에는 낮은 각형 1단의 받침을 조출해 탑신을 받고 있다. 정상에는 찰주공이 관통된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초층탑신의 결구수법은 신라 석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을 꼽도록 하면에 홈을 판 점은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비록 일부 새로운 부재가 보충되었지만, 양식적인 면에서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건립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내레이션

  • 한국어
  • 영어
  • 중국어
  • 일본어

조사연구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