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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 제518호

서울 김창숙 묘소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등록문화재 / 기타 / 인물기념시설
수량/면적 728㎡
지정(등록)일 2012.10.19
소 재 지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산 127-4
시 대
소유자(소유단체) 산림청
관리자(관리단체)  
문화재 담당부서 : 근대문화재과- 상세문의

김창숙선생은 3·1운동 발발 직후 유림계를 대표하여 파리장서를 갖고 상해로 건너가 파리강화회의에 송부하고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구성에 참여, 제2차 유림단사건 등에 관계하였다.

해방 후 친일유림들을 청산하여 유학의 기틀을 바로 세우고 성균관대학을 설립한 종교지도자이자 교육가로 활동한 인물로, 이곳은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릴 수 있는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큰 곳이다.

Kim Chang-suk (1879-1962) was a notable Confucian scholar and independence activist. Right after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in 1919, he wrote a petition for national independence as a representative of Confucian scholars in Korea, travelled to Shanghai, and sent it to the Paris Peace Conference in the same year. He participated in the establishment of the Provisional Legislative Assembly, and led a fund-raising campaign for the foundation of a base for the independence movement as well. After the liberation in 1945, he was involved in the expulsion of Confucian scholars who had collaborated with the Japanese during the colonial period, and tried to rebuild the foundation of Confucian circles. He also established Sungkyunkwan University and greatly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education in Korea. His tomb is regarded as a great historical and educational sanctuary where Korean citizens can pay homage to his patriotic life.

김창숙선생은 3·1운동 발발 직후 유림계를 대표하여 파리장서를 갖고 상해로 건너가 파리강화회의에 송부하고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구성에 참여, 제2차 유림단사건 등에 관계하였다.

해방 후 친일유림들을 청산하여 유학의 기틀을 바로 세우고 성균관대학을 설립한 종교지도자이자 교육가로 활동한 인물로, 이곳은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릴 수 있는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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