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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제276호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 (井邑 羅容均 生家와 祠堂)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등록문화재 / 기타 / 인물기념시설
수량/면적 일곽(생가) 대지면적 1,687㎡, 사랑채 72.8㎡, 문간채 62.6㎡, 고방 39.5㎡, 일곽(사당) 대지면적 1,081㎡, 사당 72.9㎡
지정(등록)일 2006.09.19
소 재 지 전북 정읍시 영원면 164-1번지 , 166-1
시 대 1890년대
소유자(소유단체) 나*** 
관리자(관리단체) 정*** 
문화재 담당부서 : 근대문화재과- 상세문의

1890년대 건립된 이 가옥은 일제 강점기에 민족 독립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대한민국 수립 이후 의회정치 지도자로서 나라 발전에 공헌한 나용균(1895~1984)의 생가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현재 안채는 주초석 일부만이 남아 있고 사랑채, 문간채, 고방이 보존되어 있으며 생가 가까운 곳에 사당이 있다.

Established in 1890s, this house has high historical value as the birthplace of Na Yong-gyun (1895-1984), who strived for Korea’s independence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and served as Constituent Assembly legislator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ROK. Only main foundations currently remain for anchae (women’s quarters), but sarangchae (men's quarters), munganchae (gate quarters), and storeroom remain in their original forms. The shrine is located near the house.

罗容均出生于1895年,学习汉学并于1914年赴日本东京早稻田大学学习,1919年2月8日因参与发表独立宣言文入狱,从此投身于民族独立运动。解放后历任制宪议员、保健社会部长官、国会副议长等,1977年作为独立功臣被授予建国勋章爱国章。保存有罗容均童年回忆的这所住宅是研究当时该地区居住史的珍贵资料,也是留存有独立运动政治家遗迹的地方,具有一定的意义。

羅容均は1895年に生まれて漢学を修学し、1914年に日本へ渡った。東京早稲田大学で修学中は、1919年2月8日独立宣言文の発表に参与したことで投獄されたことをはじめとして、民俗独立のために献身した。光復以降は、制憲議員、保険社会部長官、国会副議長を歴任し、1977年独立有功者として建国勲章愛国章が叙勲された。彼が幼年期を過ごしたこの家屋は、当時この地域の住居史を研究するのに良い資料になるだけでなく、独立運動家であり政治家である彼の遺跡としての意味がある。

1890년대 건립된 이 가옥은 일제 강점기에 민족 독립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대한민국 수립 이후 의회정치 지도자로서 나라 발전에 공헌한 나용균(1895~1984)의 생가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현재 안채는 주초석 일부만이 남아 있고 사랑채, 문간채, 고방이 보존되어 있으며 생가 가까운 곳에 사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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