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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제267호

경운궁 양이재 (慶運宮 養怡齋)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등록문화재 / 기타 / 교육시설
수량/면적 1동(1층) 연면적 145㎡
지정(등록)일 2006.09.19
소 재 지 서울 중구 세종대로21길 15 (정동)
시 대 1904~1906
소유자(소유단체) 재*** 
관리자(관리단체) 재*** 
문화재 담당부서 : 근대문화재과- 상세문의

대한제국의 마지막 관영공사인 경운궁 중건시(1904~1906년) 궁안에 건립된 건물(양이재)로 1906년에서 1910년 사이에 궁내부 산하 황족과 귀족들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수학원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소유권이 이전되고 1927년경 현 위치로 이축되면서 건물내부의 바닥, 가벽, 지붕, 누각형태의 기단 등이 다소 변형되었으나 기본골격과 측면의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게 유지되어 있다. 한국 근대 초기의 경운궁 관련시설이라는 점과 황족, 귀족들의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This is the building of Yangijae established within the palace when the final government controlled repairing work (1904-1906) of Gyeongungung Palace was put into operation between 1906-1910. The building was used as the modern educational institute for the Royal family and nobility. In 1927 the building was reconstructed after transfer of its ownership on the present location and the floor, wall, roof and the pavilion-like basic platform were changed a bit, but its basic structure and the state of its sides have been preserved comparatively well. This facility is valuable in that it is related to Gyeongungung Palace in Korea’s early modern times, and that it was used to provide modern education to the nobility.

大韩帝国最后的官营工程,重建庆运宫时(1904~1906年)在宫内建造的养怡斋,1906年到1910年用作宫内皇族和贵族的近代式教育机关-修学院。此后所有权转移,1927年左右移建于如今的位置上,建筑内部的地面、墙壁、屋顶、楼阁形态的基坛等略有变形,但基本框架和侧面形态保存良好。

大韓帝国最後の官営公社である慶運宮を建てる時(1904年~1906年)宮内に建立された建物(養怡斎)で、1906年から1910年の間に宮内部傘下皇族と貴族等の近代式教育機関である修学院として使用された。以後所有権が移転し、1927年頃現位置に萎縮されながら、建物内部の床、仮壁、屋根、楼閣形態の基壇などは若干変形したものの、基本骨格と側面の状態が比較的良好に維持されている。

대한제국의 마지막 관영공사인 경운궁 중건시(1904~1906년) 궁안에 건립된 건물(양이재)로 1906년에서 1910년 사이에 궁내부 산하 황족과 귀족들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수학원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소유권이 이전되고 1927년경 현 위치로 이축되면서 건물내부의 바닥, 가벽, 지붕, 누각형태의 기단 등이 다소 변형되었으나 기본골격과 측면의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게 유지되어 있다. 한국 근대 초기의 경운궁 관련시설이라는 점과 황족, 귀족들의 근대적 교육기관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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