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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제237호

서울 구 대법원 청사 (서울 舊 大法院 廳舍)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등록문화재 / 기타 / 업무시설
수량/면적 전면현관 폭 14.6m, 두께 8.7m, 높이 5m, 전면벽체 폭60m, 두께 25cm, 높이 최저15.1m~최고16.1m
지정(등록)일 2006.03.02
소 재 지 서울 중구 서소문동 37번지
시 대 1928년
소유자(소유단체) 서울특별시 
관리자(관리단체)  
문화재 담당부서 : 근대문화재과- 상세문의

이 건물은 1928년에 경성재판소로 건립된 법원 건물로, 광복 후 대법원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침탈 기반 시설로서 일본이 지은 법원 건물로, 당시 총독이던 사이토 마코토의 글씨로 확인되는 “定礎 昭和二年十一月 朝鮮總督子爵齋藤實 齋藤實” 기록이 새겨진 정초석이 남아 일본이 자행했던 한국 침탈의 뼈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기능을 바꾸면서 전면 현관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새롭게 신축됨에 따라, 원형대로 남은 전면 현관부만 등록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되고 있으며, 이는 ‘구 대법원청사’의 상징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This building was constructed in 1928 as Gyeongseong Court by the Japanese Empire on the site of Pyeongniwon (Hanseong Court), the first court of Korea, and it was used as Supreme Court after the 1945 Liberation. As the Supreme Court moved to Seocho-dong in 1995, the building is now used as Seoul Museum of Art. The museum was partially reconstructed in 2002, but the front part of arch-formed porch is well preserved and designates the symbolism of the ‘former Supreme Court Building’ and has the architectural and historical value.

我国最早的裁判所(法院)评理院(汉城裁判所)曾位于此地,是日帝1928年修建的京城裁判所,解放后用作大法院。1995年大法院迁至瑞草洞,如今用作首尔市立美术馆。首尔市立美术馆于2002年新建了本建筑,具有拱形玄关特点的前面部分完好保存,充分展现了‘旧大法院厅舍’的象征性,具有建筑和历史价值。

韓国最初の裁判所(法院)である平理院(漢城裁判所)があった位置に、日本によって1928年京城裁判所が造られた建物である。光復後最高裁として使用され、1995年最高裁が瑞草洞に移された後、現在はソウル私立美術館として使用されている。ソウル私立美術館は2002年本建物を新築する際に、アーチ型の玄関が特徴的な前面部を保存して、「旧最高裁庁舎」の象徴性をよく表現しており、建築的、歴史的価値がある。

이 건물은 1928년에 경성재판소로 건립된 법원 건물로, 광복 후 대법원 청사로 사용되었으며, 현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침탈 기반 시설로서 일본이 지은 법원 건물로, 당시 총독이던 사이토 마코토의 글씨로 확인되는 “定礎 昭和二年十一月 朝鮮總督子爵齋藤實 齋藤實” 기록이 새겨진 정초석이 남아 일본이 자행했던 한국 침탈의 뼈아픈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으로 기능을 바꾸면서 전면 현관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새롭게 신축됨에 따라, 원형대로 남은 전면 현관부만 등록문화재로 등록하여 보존되고 있으며, 이는 ‘구 대법원청사’의 상징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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