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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 제231호

서울 창전동 공민왕 사당 (서울 倉前洞 恭愍王 祠堂)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등록문화재 / 기타 / 종교시설
수량/면적 1동(1층), 연면적 15.65㎡
지정(등록)일 2006.03.02
소 재 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독막로21길 13 (창전동, 공민왕사당)
시 대 1950년대
소유자(소유단체) 문화재청 
관리자(관리단체) 마포문화원 
문화재 담당부서 : 근대문화재과- 상세문의

서강나루의 곡물창고에 근무하던 창고 관리인에게 현몽한 공민왕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짓고 매년 음력 10월 1일에 봉제를 하고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한다고 한다. 건립 초기에 이태조는 공민왕을 모시는 사당을 탐탁치 않게 여겨 불신동자를 모셔놓고 신당 또는 당이라 불리웠으나 200여년 전부터 공민왕사당의 칭호를 되찾았다고 한다. 한때 서울시 창전동 33번지로 이전되었으나 현 위치로 돌아왔다고 한다(연도 미상). 원 대지 면적은 50평이었으나 지금은 30평으로 축소되었으며, 1988년경 흙바닥을 시멘트 단으로 조성하였다.

The shrine was built when King Gongmin appeared in the dream of Seogangnaru Ferry’s grain storage manager. On every October 1st of the lunar calendar, locals gather in the shrine to wish for prosperity and well-being of the village. At the beginning of the construction, the King Taejo of Joseon, who was not happy with the shrine of King Gongmin, enshrined a Buddhist child in the building and called it Sindang or Dang (Shrine). The name King Gongmin’s Shrine was restored only 200 years before. It was once relocated to 33, Changjeon-dong, Seoul, but eventually returned to this current location (year unknown). Original land was 165 m2 wide, but it was reduced to current size of 99 m2. The soil floor was replaced with cement around 1988.

韩国战争时期遭到破坏,战争刚刚结束后居民自发建造并流存至今,是了解战后民间传统建筑技术水平的资料。据说是为了纪念出现在西江渡口谷物仓库管理人梦中的恭愍王而建,尽管是祠堂,却采用了正面2间而非3间的结构,具有历史和建筑价值。

韓国戦争の時破壊されたものを、戦争直後に住民たちが自ら建築したものと言い伝えられており、戦後民間伝統建築術の水準を予測できる資料と評価されている。その沿革は、西江の渡し場の穀物倉庫に勤務していた倉庫管理人の夢に現れた恭愍王を称えるためのものだと言われ、祠堂であるにも関わらず、全面が3間ではない2間であるのが特徴的な建物で、歴史的、建築的価値がある。

서강나루의 곡물창고에 근무하던 창고 관리인에게 현몽한 공민왕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짓고 매년 음력 10월 1일에 봉제를 하고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한다고 한다. 건립 초기에 이태조는 공민왕을 모시는 사당을 탐탁치 않게 여겨 불신동자를 모셔놓고 신당 또는 당이라 불리웠으나 200여년 전부터 공민왕사당의 칭호를 되찾았다고 한다. 한때 서울시 창전동 33번지로 이전되었으나 현 위치로 돌아왔다고 한다(연도 미상). 원 대지 면적은 50평이었으나 지금은 30평으로 축소되었으며, 1988년경 흙바닥을 시멘트 단으로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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