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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문화재 제140호

원주 흥업성당 대안리공소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등록문화재 / 기타 / 종교시설
수량/면적 1동, 1층 건축면적 73.92㎡
지정(등록)일 2004.12.31
소 재 지 강원 원주시 흥업면 승안동길 216, 외 1필지 (대안리)
시 대 대한제국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관리자(관리단체)  
문화재 담당부서 : 근대문화재과- 상세문의

이 건물은 뮈텔(1854~1933) 주교가 건립한 목조 한옥 성당으로,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막사로, 전쟁 뒤에는 미군 구호물자 배급처로 사용되었다. 내부 공간은 회중석과 제단으로 구성된 강당, 제의실, 주 출입구의 전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의실 출입문 앞쪽에 고해를 위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원주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00년대 공소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ㅇ1900년대 초에 지어진 목조 가구식 한옥 성당 건축물로 교회사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음.

ㅇ1892년 르 메르 신부 재직 시에 공소를 건립하였다고 하지만 위치를 알 수 없다. 지금의 공소는 1900년에서 1906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910년 11월 12일 뮈텔 주교가 축성하였다. 이후에 1950년대에 지붕을 기와로 개조하였다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여 다시 초가로 삼았고, 1970년대에 슬레이트로 바꾸었다. (『원동 100년사』, 1999)

ㅇ『원동 100년사』에는 1910년경에 신부방을 만들었다고 씌어있고, 관리자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대에 2칸 증축하였고, 그 중에 마지막 칸을 1970년대에 손보았다고 한다. 이 1950년대와 1970년대는 『원동 100년사』에 등장하는 지붕개수와 개략적으로 일치한다.

ㅇ1950년대에 양대석 신부초가를 기와로 개조하였으나, 지붕하중이 커져 다시 초가로 복원

ㅇ1970년대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조

ㅇ1986년 3월 벽보수공사와 창호를 알루미늄 창호로 개조하였음.

This Korean Traditional style wooden church, established by Bishop Mutel (1854-1933), was used as a military barrack of the North Korean People’s Army during the Korean War and US Relief Supply Center after the war. Indoor space consists of auditorium, which includes congregation seats and altar, vestry, and antechapel in the main gate. In front of the antechapel entrance is a partition for sacrament of confession. It is historically valuable as the only secondary station from 1900s remaining in Wonju. • Built in early 1900s, this Korean Traditional style wooden church building is high valuable in terms of history of church. • It is said that a secondary station has been established in 1892 when Priest Le Merre was in his office, but its location is unknown. The current secondary station is assumed to have been established between 1900 and 1906, and its consecration was performed by Bishop Mutel on November 12th 1910. The roof was later reformed into tiles in 1950s, but was replaced again with thatch due to inability to withstand the load. It was then changed to slates in 1970s. (『The 100-Year History of Wodong』, 1999) • It is written in 『The 100-Year History of Wondong』 that the priest’s room was built around 1910. A manager also interviewed that 2 rooms were added in 1950s and the last room was restored in 1970s. These years generally agree with the number of roofs that appears in 『The 100-Year History of Wondong』. • The thatch on priest Yang Daeseok’s residence were replaced with tiles in 1950s, but were replaced again with thatch due to increased load on the roof. • The roof was reformed in 1970s with slates. • In March 1986, the walls underwent repair construction, and the windows and doors were replaced with aluminum ones.

作为于1900-1906年建造的木造构架式韩屋圣堂,现在由6间公所组成。虽然建筑的完成度不高,但是从地区教会史的侧面来看具有很高的价值,建造当时原州地区曾拥有的公所中仅存留下的,在1900年代最初十年的韩屋公所的稀少性方面来看也有一定的价值。

이 건물은 뮈텔(1854~1933) 주교가 건립한 목조 한옥 성당으로,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막사로, 전쟁 뒤에는 미군 구호물자 배급처로 사용되었다. 내부 공간은 회중석과 제단으로 구성된 강당, 제의실, 주 출입구의 전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의실 출입문 앞쪽에 고해를 위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원주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1900년대 공소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

ㅇ1900년대 초에 지어진 목조 가구식 한옥 성당 건축물로 교회사적 측면에서 가치가 높음.

ㅇ1892년 르 메르 신부 재직 시에 공소를 건립하였다고 하지만 위치를 알 수 없다. 지금의 공소는 1900년에서 1906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1910년 11월 12일 뮈텔 주교가 축성하였다. 이후에 1950년대에 지붕을 기와로 개조하였다가 하중을 견디지 못하여 다시 초가로 삼았고, 1970년대에 슬레이트로 바꾸었다. (『원동 100년사』, 1999)

ㅇ『원동 100년사』에는 1910년경에 신부방을 만들었다고 씌어있고, 관리자의 증언에 따르면 1950년대에 2칸 증축하였고, 그 중에 마지막 칸을 1970년대에 손보았다고 한다. 이 1950년대와 1970년대는 『원동 100년사』에 등장하는 지붕개수와 개략적으로 일치한다.

ㅇ1950년대에 양대석 신부초가를 기와로 개조하였으나, 지붕하중이 커져 다시 초가로 복원

ㅇ1970년대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조

ㅇ1986년 3월 벽보수공사와 창호를 알루미늄 창호로 개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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