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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1호

절렬양정씨지려 (節烈兩丁氏之閭)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분 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2000.11.17
소 재 지 전북 장수군 산서면 계월로 319-23 (하월리)
시 대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자(관리단체) 정종술

이 정려각은 절개와 지조를 지킨 두 분 여성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조선 경종 3년(1723)에 세우고 순조 19년(1819)에 고친 것이다.

정황(丁煌, 1512∼1560)의 후손들이었던 이 분들의 행적은 정려 안에 걸린 현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한 분은 정유재란(1597년) 때 왜적에게 봉변을 당하고 스스로 물 속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고, 또 한 분은 남편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의 뒤를 따라 지조를 지켰다고 한다.

이 정려각에는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솜씨가 담겨 있는데 정면과 측면이 각 한 칸씩이지만 정면이 더 넓은 편으로 시원한 느낌이 들고 내부는 2칸으로 나누어 두 정려의 정려판을 걸어놓은 상태이다.

이 정려각은 절개와 지조를 지킨 두 분 여성의 행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조선 경종 3년(1723)에 세우고 순조 19년(1819)에 고친 것이다.

정황(丁煌, 1512∼1560)의 후손들이었던 이 분들의 행적은 정려 안에 걸린 현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한 분은 정유재란(1597년) 때 왜적에게 봉변을 당하고 스스로 물 속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고, 또 한 분은 남편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남편의 뒤를 따라 지조를 지켰다고 한다.

이 정려각에는 조선 후기의 뛰어난 건축솜씨가 담겨 있는데 정면과 측면이 각 한 칸씩이지만 정면이 더 넓은 편으로 시원한 느낌이 들고 내부는 2칸으로 나누어 두 정려의 정려판을 걸어놓은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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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세 문 의 : 전라북도 장수군 산림문화관광과 063-350-2224